이웃집 화단에서 일했던 지난 일요일 이후 며칠째 몸살을 앓고 있다. 평소 안 쓰던 근육이 뭉쳐 아프고, 몸이 무겁다. 중환자가 된 것처럼 혼미한 상태로 자신의 거친 숨소리를 듣거나 산만한 꿈을 꾸곤 한다.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을 벌떡 일으키지만, 과연 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약속을 좀 미뤘으면 하는 궁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시 몸을 눕히자 어릴 때 수확기의 과수원에서 일손을 거들던 풍경이 눈앞에 떠오른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보였을지도 모르나, 내겐 무서울 정도로 힘에 부친 노동이었다. 그때의 짧은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끝내 육체노동의 경이로움과 공포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약속을 수도 없이 바꾸곤 하던 친구가 있었다. 어쩌다 그가 약속을 변경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생각될 정도였다. 그런 사람과 절연하지 못했던 것은 우리가 ‘같은 바닥’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더 어색하거나 힘들어질 수도 있는 순간의 여지를 두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는 시간 약속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와의 약속도 스스럼없이 어겼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의 심각함을 깨닫지 못했다. 용감하게 그것을 지적했던 사람들만 하나같이 낭패를 보았다. 수없이 약속을 깨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 때문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약속을 미룰 궁리를 버리고 약속을 지킬 궁리를 하게 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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