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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고령사회 대비

입력
2016.07.2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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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지자체가 예산을 알뜰히 쓰고 있는가를 눈여겨 보곤 한다. 예를 들어 청사에 돈을 왕창 퍼부은 걸 보면, 속이 상한다. 관청건물답지 않고 무슨 예술 관련 건물 같아 어울리지도 않고 마치 벼락부자 집을 보는 것 같다. 또 억지스러운 행사로 예산 낭비하는 걸 보면, 그래서 파산 위기의 지자체가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 주민소환제를 발동해서라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랜만에 지자체가 선진적이고 꼭 필요한 일을 시작해 반가웠다. 바로 원격 전기검침 시스템을 통해 치매노인과 독거노인을 보살피는 사업이다. 모든 집에 깔린 전력망에다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해 치매노인의 안전을 살피는 서비스를 시범 테스트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거노인의 전력사용 패턴을 분석해 전깃불을 오랫동안 끄지 않거나 전기사용량이 늘지 않으면 보호자나 사회복지기관에 알리게 된다.

광주광역시가 한전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치매 독거노인 50명을 대상으로 테스트 중이다. 곧 1,00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고 2020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 시스템이 전국으로 확대되면 치매나 독거 노인은 그만큼 안전해질 것이다.

이처럼 소프트웨어 기술로 노인을 보살피는 것 말고도 조금만 신경 쓰면 노인을 배려할 방법이 많다. 그중에 내가 최근 실제로 경험하고,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 문제가 하나 있다.

얼마 전 독일 남부를 16일간 여행하고 왔다. 여행이란 뭔가. 걷는 것이다. 특히 유럽여행은 걷고 또 걷고 걷다가 언덕과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젊은이들과의 여정을 차질 없이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서울에서와 달리 별로 힘들지 않았다는 점이 한몫했다.

서울에서는 계단 앞에서 늘 부담을 느껴 주변에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있는지 찾곤 한다. 80년을 써 온 내 무릎연골은 많이 닳았겠지만, 다행히 아직 통증은 없다. 그래도 서울에 설치된 계단은 오르내리기는 버겁다.

똑같은 상태의 내 무릎이 왜 유럽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는 무리가 느껴지지 않았을까. 유럽의 계단은 하나의 높이가 서울보다 낮아서 힘을 덜 들이고도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급한 김에 손바닥으로 유럽의 계단 높이를 대충 재어 보았다. 대략 13~14㎝다.

한국에 오자마자 지하철역 계단 높이를 재어 봤더니 17~18㎝다. 물론 서울 강남의 몇몇 지하철 계단과 공공건물의 계단 중에는 낮은 곳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계단은 유럽보다 높다. 그 계단을 3~4㎝ 낮추는 작은 배려만으로 나 같은 노인이 굳이 엘리베이터를 안 찾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2050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가 될 거란다. 빠르게 늘어날 노인을 위한 시설이며 시스템을 준비하려면 지금 당장 시작해도 결코 이른 시간은 아니다. 계단 높이를 몇㎝ 줄이는 걸로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를 새로 만드는 비용과 수고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 같은 수학의 둔재도 계단 높이를 낮추면 부득이 전체 계단이 차지하는 면적이 늘어날 거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계단을 높게 만들어 절약되는 땅의 가치와 노인들의 편리와 안전을 저울질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100세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우리 사회 현실은 아직도 산업시대 시스템에 머물러 있다. 하루아침에 혁명을 하듯이 모든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다.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계단의 높이를 개선하는 일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나쁠 거 없다.

노인 돌봄을 최첨단 ICT를 이용하거나 기존의 시스템을 살짝 바꾸는 것으로 우리도 새로 길을 열어 가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그 시작은 작은 데서 움튼다.

고광애 노년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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