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녹취록’에 대한 KBS보도국의 침묵을 비판한 정연욱 KBS 기자의 보복인사 논란에 KBS 보도국 간부들이 “뒷감당은 당연하다”며 해당 기자를 비난하고 나서면서 내부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보도지침과 보복인사 논란으로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KBS에 보도국 간부들과 평기자 사이 대립이라는 내홍까지 더해지는 상황이다.
정지환 통합뉴스룸 국장(옛 보도국장)을 포함한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 31명은 지난 18일 ‘최근 현안에 대한 보도본부 국부장단의 입장’이란 제목의 성명을 내고 “외부 매체에 황당한 논리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기고를 하고서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며 보복인사 논란을 부른 정 기자의 제주 발령을 당연시하는 주장을 했다.
KBS 경인방송센터 소속이던 정 기자는 지난 13일 기자협회보에 ‘이정현 녹취록’을 보도하지 않는 KBS 보도국 간부들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한 지 이틀 만에 제주방송총국으로 전출 명령을 받았다. 당시 사측은 “인사원칙에 따른 인사”였다는 입장을 내놨다.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은 “언젠가부터 외부 매체에 KBS를 깎아 내리는 기고를 하는 것이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 영웅적인 행태로 인식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KBS인으로서 KBS를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도 하는 게 당연한 자세가 아닌가”라며 정 기자를 비판했다.
‘이정현 녹취록’ 논란에 대해선 “언론사에는 각종 이해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오기 마련인데 합리성이 있으면 반영을 하고 비합리적이고 사리에 맞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으면 된다. KBS 뉴스는 이런 원칙을 지켜왔다”며 “본질은 KBS 9시 뉴스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청와대 보도개입 논란을 일축했다. 또 “만약 (당시 해경 관련 뉴스에) 문제가 있었다면 당시 보도국장이 답변을 해야 할 문제”라며 논란에 선을 긋는 모습이었다.
KBS가 ‘이정현 녹취록’ 논란을 보도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유감스럽게도 KBS가 관련 소송의 당사자(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징계무효 소송)이기 때문에 원고 측이 녹취를 이용해 펼치는 일방적인 주장에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기 어렵고 뉴스를 제작 보도해 회사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었다”고 전했다.
간부들은 KBS 보도에 대한 외부의 비판을 매도하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은 “노조나 협회, 게시판의 글들은 진보좌파 매체의 논조가 지선의 가이드라인인 것처럼 KBS뉴스를 몰아가고 있다. 진보좌파 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기수별 성명을 활용해 KBS뉴스를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KBS 보도국 내에선 “수뇌부가 조직 구성원들을 편 가르고 비판 기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한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한 KBS 보도국 관계자는 “보도국장이 주축이 돼 자사 보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공격하는 언론사는 KBS 외에 없을 것”이라며 “보도국 내 패거리 문화라고 밖엔 설명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KBS 근무 20년 차 이상 기자 51명도 같은 날 비판 성명을 내고 “우리 뉴스는 공개된 내용에 조차 눈을 감고 침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언론사로서의 책임을 가진 경영진, 보도본부 수뇌부 어느 누구 하나 책임 있게 나서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기자들을 통제하려는 칼날이 조직 내부를 난도질하고 있다”며 “조직의 안정을 위해 부당인사를 조속히 철회하고 원상복귀 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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