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7월 20일

로버트 러들럼의 소설 ‘본 시리즈’ 3부작에서 주인공이 추적하는 ‘카를로스’는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Ilich Ramirez Sanchez, 1949~ )란 본명보다 ‘자칼(Jackal)’이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실존 암살자였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공산주의자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두 남동생의 이름도 각각 레닌과 블라디미르라고 한다) 쿠바 게릴라캠프에서 훈련을 받고 모스크바로 유학, KGB의 스파이 교육을 받은 후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F)에 투신했다. 그는 72년 ‘검은 구월단’의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 습격서부터 시작해, 서방 첩보당국의 추적을 따돌리며 비행기 납치, 폭탄 테러 등을 여러 차례 자행했다. 소설이나 영화의 악당들처럼 변장과 여권 위조에 능하고 성형수술도 여러 차례 받았으며 여러 언어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등 상당한 교양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4년 아프리카 수단에서 경미한 고환 수술을 받은 뒤 체포돼 그 해 8월 프랑스로 이송됐고, 97년 12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2005년 7월 20일(오늘) 그는 프랑스 교정당국이 자신을 장기간 독방에 수감함으로써 유럽인권헌장 제3조 즉 “비인간적이고 수치스러운 대우 금지(Prohihbition of Inhuman and Degrading Treatment”조항 등을 위반했다며 프랑스 정부를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앞서 2003년 그는 자신의 변호사와 옥중 결혼했다.
이듬해 4월 유럽인권재판소는 12대 5로 프랑스가 재소자 자칼에 대해 헌장 3조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헌장 제13조 즉 재소자의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권리(Right to an Effective Remedy) 조항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자칼의 편을 들었고, 1만 유로를 원고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3년 작고한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 같은 이는 그를 “빼어난 동포”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위대한 전사”라며 공개적으로 떠받들기도 했지만, 상식을 가진 이에게 그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다만 2005년 제소는 그가 인류의 이상과 재소자 인권에 기여한, 현재로선 유일한, 부인할 수 없는 공헌이었다. 그는 현재 프랑스 앙제 북부 클레흐보(Clairvaux)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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