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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리우에서 울려퍼질 ‘대~한민국’

입력
2016.07.1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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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천(오른쪽) 대한올림피언협회 회장과 이승배 현 복싱 국가대표팀 감독. 대한올림피언협회 제공
송순천(오른쪽) 대한올림피언협회 회장과 이승배 현 복싱 국가대표팀 감독. 대한올림피언협회 제공

“동독 최초의 복싱 금메달이냐 대한민국 건국 최초의 금이냐가 걸린 게임이었죠.”

여든 둘의 복싱 원로 송순천 대한올림피언협회 회장은 60년 전 사각의 링에서 펼쳐진 사투를 담담하게 회상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처음으로 남반구에서 벌어진 올림픽이었다. 내달 6일(한국시간) 개막하는 리우올림픽이 멜버른, 2000년 시드니에 이어 세 번째로 남반구에서 열리는 대회다.

한국 복싱은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한국이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1948년 런던 대회 이후 68년(냉전으로 불참한 1980년 모스크바 대회 제외) 만에 한 명도 올림픽 출전권을 따지 못했다. 19일 오전 국제복싱협회(AIBA)가 56kg급 함상명(21ㆍ용인대)에게 와일드카드를 허락해 간신히 체면을 유지했지만 여전히 풍전등화 신세다. 하지만 예전에는 복싱이 올림픽의 대표적인 효자 종목이었다. 1948년 런던(한수안), 1952년 헬싱키(강준호)에서 연달아 동메달을 땄고 1956년 멜버른에서 송순천이 밴텀급에서 건국 최초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전쟁의 포화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스물한 살 약관의 젊은이가 이뤄낸 쾌거였다.

그의 목에 걸린 건 은메달이었지만 경기 내용은 금메달감이었다. 결승 상대인 동독의 볼프강 베렌트를 3라운드 경기 내내 두들겼다. 2라운드가 끝나고 진행 요원들이 시상식의 금메달 자리에 태극기를 걸어놨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2-3 판정패. 승자인 베렌트도 어리둥절해 했다. 편파 판정이 아니었다면 건국 최초의 금메달(1976 레슬링 양정모)이 20년 앞당겨졌을 지도 모른다.

뼈아픈 패배지만 송 회장은 나중에 은메달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19일 본보와 인터뷰에서 “그 때 한국은 전쟁 폐허 속에서 세계 최빈국이었다. 불공정한 판정은 예선부터 계속 있었고 약소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그 또한 스포츠와 삶의 일부라는 걸 깨닫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며 “불과 스물 한 살의 나이에 아시아 복싱 선수 최초, 한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됐다면 보통 사람의 삶을 살기 어려웠을 거다. 지나고 보니 억울한 판정이 겸손을 배우고 노력하는 삶을 살게 해줬다”고 설명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시상식 장면. 송순천(맨 오른쪽)이 상기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90년사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시상식 장면. 송순천(맨 오른쪽)이 상기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90년사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올림픽을 불과 1년 반 앞둔 1955년 4월에야 복싱에 입문했다는 점이다. 송순천이 ‘천재 복서’로 불린 이유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택할 수 있는 종목이 복싱뿐이었다. 아마 레슬링이나 유도를 했더라도 올림피언이 됐을 거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도둑’ 맞고 7년 후인 1963년, 이듬해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베렌트가 대한체육회를 통해 송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그날의 승리는 당신 것이었다’는 내용과 함께.

둘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재회했다. 베렌트는 독일의 대기자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송 회장은 “한국에 오자마자 저를 찾아줬다. 반갑게 인사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또한 위대한 올림피언 중 하나다”고 미소를 지었다.

60년 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는 요즘 침체에 빠진 한국 복싱을 보며 마음이 편치 못하다. 열악한 저변, 국내 협회의 무능력, AIBA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탓에 당한 판정의 불이익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송 회장은 후배 탓, 제자 탓을 하지 않았다. 그는 “선수와 지도자가 아니라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복싱의 부활을 의심하지 않았다.

“복싱은 상대방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경기입니다.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야만 링 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올림픽에서 다시 빛을 발할 겁니다. 힘들게 리우에 가게 된 함상명도 한국 복싱의 마지막 자존심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 믿습니다.”

한편 1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는 리우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단의 결단식이 열렸다. 한국은 선수 204명과 경기 임원 94명, 본부임원 33명 등 총 331명의 선수단을 파견한다. 선수 204명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210명보다 작은 규모로 1976년 몬트리올 대회 50명 이후 최소 규모다. 체육회는 이번 대회 개회식 기수에 펜싱 국가대표 구본길(27ㆍ국민체육진흥공단)을 선임했다.

남녀 주장에는 진종오(37ㆍKT)와 오영란(44ㆍ인천시청)이 선임됐고, 최고령 선수는 오영란, 최연소는 여자 기계체조 이고임(16ㆍ인천체고)으로 조사됐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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