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식을 들었다. 한 지방 방송사의 라디오 작가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이유가 생활고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집필하던 해당 프로그램이 없어지면서 순식간에 직장을 잃은 현실을 비관했을 것이라는 말이 더해졌다.
화려한 꽃길만 걸을 것 같지만 현실 속 방송작가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다.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수식어 속에 퇴직금도 4대 보험도 적용 받지 못한다. 오죽하면 방송작가들 사이에서 “방송작가는 일용직” “함부로 아파도 안 된다”는 말이 있을까. 담당 프로그램이 예고도 없이 사라지면 순식간에 실업자가 될 수 있고, 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기에 아파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가슴 아픈 사정이 담겨있는 말들이다.
지난 2008년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SBS 교양프로그램 ‘긴급출동 SOS 24’의 막내 작가가 서울 목동 SBS사옥 옥상에서 투신한 사건이었다. 당시 방송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외주 제작업체에서 SBS로 옮겨온 지 두 달 만에 20대의 젊은 작가가 자살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금세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열악한 근무환경이 죽음의 원인으로 꼽혔다.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길래 방송작가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일까. 라디오든 예능이든, 다큐멘터리이든 하나의 프로그램에는 대개 여러 명의 방송작가들이 포진돼 있다. 오랜 경력의 메인 작가 한 명이 적게는 2명, 많게는 5명 이상의 작가들과 일을 한다. 방송가에서 이름이 알려진 메인 작가라면 방송사의 중견급 PD 정도의 연봉을 받지만, 막내 작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명 ‘새끼 작가’로 불리는 막내 작가들에 대한 처우는 ‘열정페이’ 수준이다. 이들은 대개 ‘해당 프로그램 종방시’까지 계약을 맺고, 급여도 월 100만원대 수준이다. 외주제작사에 소속된 작가들이라면 급여는 더 떨어진다. 하는 일도 작가라는 직함과는 거리가 멀다. 출연자나 장소를 섭외하기 위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전화를 돌리거나, 자료 조사를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게 다반사다. 프로그램에 필요한 소품 등을 준비하고 정리하는 일도 한다. 4년 경력의 한 예능 작가는 “방송작가를 ‘잡가’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지난 3월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조사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당 노동일수는 평균 5.63일,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3.8시간이었다. 월 평균 급여도 150만원 미만이 49.9%나 됐다. 응답자의 46%는 “급여체불 경험이 있다”고도 답했다. 6년 경력의 다큐멘터리 작가는 “방송작가들은 대개 프로그램 건당으로 계약을 맺는다”면서 “프로그램이 중단되거나 결방되면 돈을 못 받는 건 당연한 일처럼 됐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방송사나 담당 PD에게 하소연도 할 수 없다. 인적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방송계에서 불이익을 당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방송작가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20년 경력의 한 작가는 “돈보다는 열정”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한쪽 가슴이 시리다고 했다. 베테랑 작가의 솔직한 고백이 방송계의 불투명한 미래를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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