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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스러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입력
2016.07.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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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연결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색채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연결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패션은 역사에서 인간이 발명한 가장 정교한 인상관리 체계다. 인상관리에서 머리칼의 색, 피부색, 눈동자 색에 기초한 개인이 지닌 고유한 색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각 개인의 외모와 이미지를 부각시켜주는 가장 적합한 색을 찾아낸 후 스타일링에 접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색은 우리의 기분, 우리가 스스로를 느끼고, 평가하며, 타인이 우리에게 반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색은 우리의 얼굴을 연주한다.

캐시미어를 입을 때와 실크를 입을 때, 벨벳을 입을 때, 직물이 우리의 몸과 접촉하며 내는 소리와 메시지는 다 다르다. 이때 메시지의 특성을 결정하는 것이 색채다. 색채는 옷의 형태와 소재의 질감, 실루엣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매장에 놓인 특정한 옷에 끌리는 데는 색도 큰 힘을 발휘한다. 색이 우리의 귓가에 말을 걸기 때문이다. 색채는 내 안에서 미처 용기가 없어 말하지 못했거나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끄집어내도록 격려해준다. 영어에서 질투에 빠졌다고 할 때 ‘Green with envy’라고 한다. ‘See red’ 하면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는 뜻이며, 소심하고 겁이 많다는 걸 표현할 때는 ‘Yellow’를 쓴다. 기분이 울적할 때는 ‘Have the blues’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색채 중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연결되는 것들이 많다.

르네상스 시대, 색은 패션과 정교하게 결합한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이 시기 자아 만들기(Self-Fashioning)의 기술이 중요성을 띠게 되면서 색채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색은 본격적으로 인간의 감정과 사회 계층, 문화적 성향을 드러내는 변별적 지표가 된다. 초록색은 사랑을, 회색은 슬픔을, 황색은 적대감을, 청색은 충성을, 빨강은 고귀함을 드러냈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색을 섬세하게 선택했다. 직물의 표면 처리에 따라 같은 색이어도 다른 느낌을 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색의 미세한 뉘앙스가 인간의 이미지를 무한하게 변화시킨다는 걸 알고 있었던 셈이다. 르네상스인들은 염색의 달인이었다. 검정색의 경우, 광택이 나는 검정과 무광택의 검정을 만들어낼 줄 알았다. 광택이 있는 검정의 경우는 성적으로 섹시하고 대담한 느낌을 빚어내는 반면 광택이 없는 검정은 사람에게 차분하고 절제된 느낌을 준다. 르네상스인은 동일한 색을 색조를 미세하게 나누고, 옷의 겹쳐 입기를 통해 다양한 자아를 만들었다.

‘꼼 데 가르송’이란 브랜드로 잘 알려진 패션 디자이너 가와쿠보 레이는 ‘나는 세 가지 색조의 검정색 속에서 작업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디자이너의 말을 이해할 단서를 일본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쓴 ‘그늘에 대하여’라는 작품에서 찾아냈다. “때나 그을음, 비바람의 더러움이 붙어 있는 것, 내지는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색조나 광택을 사랑하고 그런 건물이나 가구 가운데 살고 있으면 기묘하게 마음이 풀리고 신경은 편안해진다.”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빛의 이면인 ‘음영(Shadow)'에 끌렸다. 그늘은 오랜 세월의 더께가 묻어 거슴츠레하게 내는 사물의 빛이다. 고색창연함이라고 풀면 가장 편하겠다. 시간 속에서 숙성된 사물에선 미세한 색의 결들이 느껴진다. 검정은 모든 색을 껴안아 자신의 자궁 속에서 숙성시킨다. 그가 “빨강은 블랙이다”라는 말을 한 것도 그런 이유이리라. 그래서일까 가와쿠보 레이의 검정에는 항상 섬세하게 느껴지는 차이가 존재한다. 마치 한 벌의 옷에 여러 벌의 옷이 겹쳐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나의 색을 가진 ’지조‘ 있는 인간이 되는 것, 그러나 그 한 가지 속에 셀 수 없이 미세한 색조의 차이를 빚어내는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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