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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 Cast] '겨울 디즈니, 여름 픽사'를 만든 남자

입력
2016.07.1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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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극장가 애니메이션 강자는 ‘빅 히어로’와 ‘인사이드 아웃’이었다. 올해는 ‘주토피아’와 ‘도리를 찾아서’가 바통을 이을 기세다. 겨울 관객을 즐겁게 한 ‘빅 히어로’와 ‘주토피아’는 월트디즈니 출신이다. 2014년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겨울왕국’ 이후 디즈니는 겨울 극장가에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여름 관객들의 눈길을 끈 ‘인사이드 아웃’과 ‘도리를 찾아서’는 픽사 스튜디오의 작품이다. ‘겨울 디즈니, 여름 픽사’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디즈니와 픽사의 숨은 지휘자는 존 래시터(59)다. 그는 디즈니와 픽사의 최고창작책임자(CCO)다.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기획되고 제작된 뒤 관객 앞에 나설 때까지 창작과 관련한 모든 일들에 관여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 ‘겨울왕국’의 엘사가 노래 ‘Let It Go’에 맞춰 춤을 추는 유명 장면은 그의 몸동작에서 나왔다. ‘겨울왕국’ 제작진이 엘사의 춤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할 때 래시터가 시연을 보였고, 제작진은 래시터의 춤사위를 담은 동영상을 바탕으로 엘사의 춤을 만들어냈다. 일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빅 히어로’의 경우 일본 애니메이션을 사랑하고 미야자키 하야오를 존경하는 래시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디즈니에서 쫓겨났던 디즈니 마니아

존 래시터 월트디즈니-픽사 최고창작책임자(CCO)가 피규어가 가득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월트디즈니 코리아 제공
존 래시터 월트디즈니-픽사 최고창작책임자(CCO)가 피규어가 가득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월트디즈니 코리아 제공

래시터는 어렸을 적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광이었다. 7세 때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고, 디즈니가 설립한 칼아츠 애니메이션과에 18세 때 들어가며 꿈에 가까워졌다. 당시도 지금도 칼아츠는 애니메이션을 동경하는 인재들에겐 꿈의 학교. 래시터의 동기들도 쟁쟁했다. 팀 버튼과 브래드 버드(‘인크레더블’과 ‘미션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감독) 등이 함께 공부했다. 래시터는 졸업 뒤 전쟁과도 같은 경쟁을 뚫고 디즈니 입사에 성공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며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던 래시터는 1980년대 초반 컴퓨터그래픽(CG)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CG를 활용해 애니메이션의 배경을 만들면 더욱 효과적이고 효율적일 것이라 믿었던 그는 타고난 ‘덕후’답게 CG에 매달렸다(래시터의 덕후스러움은 일상 생활에서도 드러난다. 하와이안 셔츠 마니아인 그는 1년 365일 하와이안 셔츠만 입는다. 소유하고 있는 하와이안 셔츠만 1,000벌. 쉐보레 영업소 직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동차 마니아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성향은 ‘카’와 ‘카2’ 연출에 반영됐다. 이른바 ‘덕업일치’를 이룬 셈이다). 회사도 처음엔 도왔다. 디즈니가 실사와 CG를 결합한 ‘트론’이라는 공상과학(SF) 영화를 만들며 할리우드의 선구자 역할을 할 때였다. 하지만 CG에 전념하던 래시터는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지를 받는다. 회사 중역들은 CG와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기법의 결합이 돈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래시터는 지인의 도움으로 루카스필름에 입사한다. 조지 루카스는 애니메이션보다 래시터의 CG연구를 눈여겨 봤고, 래시터의 연구개발을 지원한다. 래시터는 CG를 애니메이션의 배경으로만 활용하는 것을 넘어 애니메이션 전체를 CG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게 된다.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루카스필름의 CG부문을 인수하면서부터 래시터가 일하던 곳은 픽사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픽사는 1998년 CG로만 만들어진 첫 장편애니메이션 ‘벅스라이프’를 시작으로 ‘토이스토리’ 등을 만들며 오늘의 픽사가 됐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2006년 디즈니는 픽사를 인수한다. 잡스가 내건 인수 계약 조건 중 하나는 래시터의 CCO 임명이었다. 래시터는 디즈니의 CCO를 겸하게 됐고 픽사의 공동설립자이자 래시터의 오랜 동료 에드윈 캣멀이 디즈니 회장 자리에 올랐다.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픽사의 핵심 인력이 디즈니를 점령한 셈이다.

픽사 창립자, 디즈니 전성기를 열다

존 래시터 월트디즈니-픽사 최고창작책임자(CCO). 월트디즈니 코리아 제공
존 래시터 월트디즈니-픽사 최고창작책임자(CCO). 월트디즈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와 픽사가 하나가 된 뒤 래시터와 캣멀은 디즈니 개혁에 나섰다. 디즈니 마니아였다가 디즈니에서 쫓겨난 파란의 인물이 디즈니 수술을 집도하게 된 것이다.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할 무렵 전통의 애니메이션 명가라는 수식이 무색하게 디즈니는 수렁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픽사와 드림웍스애니메이션의 공세에 옛 명성이 흔들리던 시절이었다.

래시터와 캣멀은 상하 소통이 없는 관료제적인 조직부터 바꾸었다. 창작 활동에 관여하는 주요 스태프들이 수시로 만나 이야기할 수 있도록 회사 건물 구조도 변경했다. 꼭대기에 있던 중역들의 사무실을 중간 층으로 옮겨 소통을 강조했고, 카페와 바 형식의 회의실도 만들었다.

소프트웨어 측면의 변화도 시도했다. 픽사 애니메이션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단편을 붙여 상영하도록 했다. 신진들을 발굴하고 상업성 추구 때문에 장편을 만들 때 꺼려지는 실험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CG가 애니메이션업계의 주류가 되면서 디즈니는 당초 전통적인 셀애니메이션 부서를 없앨 예정이었다. 래시터와 캣멀이 디즈니에 들어가자마자 한 초기 조치 중의 하나가 셀애니메이션 부서의 폐지를 취소하는 것이었다. 역사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첨단기술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 내린 조치였다. 래시터는 2015년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CG애니메이션은 손으로 그려서 만드는 애니메이션과 매우 비슷하게 만들어진다”며 “(셀애니메이션은)디즈니의 손 그림 애니메이션이 지닌 독특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과 연구를 중시하는 픽사의 경영 철학도 이식했다. 일본의 풍치가 담긴 ‘빅 히어로’를 제작하기 전 래시터는 애니메이터들을 도쿄에 파견해 영화에 반영할 만한 이미지를 얻어 오도록 했다. 영화의 주요 캐릭터인 의료로봇 배이맥스는 일본 신사의 동종에서 유래했다. ‘주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감독 바이런 하워드와 스태프가 아프리카 사파리 지역을 다녀오기도 했다.

디즈니의 전통에 픽사의 DNA가 각인되며 성공한 작품으로는 ‘겨울왕국’이 꼽힌다. 이후 나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은 픽사인 듯 픽사 아닌 디즈니만의 감성을 지니고 있다. 픽사와는 구별되는 디즈니만의 전통을 지키고 싶은 디즈니 마니아 래시터의 야심이 반영된 결과다. 디즈니와 픽사가 결합한 지 10년, 래시터의 디즈니 개혁이 시작된 지 10년, 우리는 ‘겨울 디즈니, 여름 픽사’라는 새로운 흥행 공식과 마주하게 됐다.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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