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삶을 살아온 평범한 노인들이 생의 끝자락에서 ‘아름다운 기부’ 실행했다는 소식이 속속 전해지면서, 각박한 세상살이에 찌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이 선행의 주인공들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 평생 모은 쌈짓돈을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해 기부문화에 인색한 우리 사회에 경종도 울리고 있다.
한밭대는 최근 암 투병 중인 한 할머니(70)로부터 “지금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의 보증금(260만원)을 기부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할머니는 알고 보니 8년 전 이름도, 성씨도 알리길 꺼리며 한밭대에 1억원을 기부했던 인물이었다. 당시 기부금은 할머니가 넉넉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평생 아끼고 아껴 모은 전 재산이었다. 할머니는 이도 부족했는지 마지막으로 남은 아파트 보증금마저 내놓으며 “유능한 지역 인재 양성에 써 달라”고 한 것이다. 할머니는 1억원을 기부한 지 5년 만인 2013년 암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힘겨운 투병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밭대 측은 “할머니는 남김없이 모두 주고 싶다면서 유언상속 기부를 약속했다”며 “앞서 기부한 1억원과 합해 유언에 따라 소중하게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에는 일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던 고(故) 강천일 씨가 용산구청에 자신의 전 재산 3,600만원을 기부한 뒤 5일 만에 눈을 감았다. 기부금은 강 할아버지가 빌딩 환경미화원과 가락시장 짐꾼 등으로 일하며 평생 억척같이 모은 것이다. 그는 용산구 후암동 쪽방에서 지내던 중 지난 1월 말기 암 판정을 받아 투병하다 끝내 세상을 떠났다.
강 할아버지는 기부 당시 “나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그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다. 평생 힘들게 산 만큼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강 할아버지는 이렇게 돈을 내어준 뒤 닷새 만에 세상을 떠났다. 용산구는 강 할아버지가 기부한 소중한 돈을 설립 준비 중인 용산복지재단의 기본재산으로 활용키로 했다.
올 1월 세상을 떠난 전용권(71)씨는 이종사촌 형인 김덕수(78)씨를 통해 사후 4개월 만인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일원1동 주민센터에 1,500만원을 전달했다. 이날 전달한 돈은 1급 정신장애인으로 방에서만 살아온 전 씨가 평생 모은 돈 중 일부다. 김 씨는 평생 사회 도움으로 살아온 것을 고마워한 전 씨가 3,800만원이 든 통장을 남겼다며, 주민센터에 기부하고 남은 돈도 좋은 곳에 쓰이도록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렇게 기부를 결심했을 경우 지정기탁제를 통하면 기부처는 물론 기부금품의 용도까지 정해 기부할 수 있다. 한밭대와 용산구청에 기부된 돈은 모두 지정기탁금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같은 법정모금기관은 국민으로부터 지정기탁 또는 비지정기탁 성금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사회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한다.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희정 사무처장은 “노인 분들의 아름다운 기부는 누구나 우리 사회에 기부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부는 우리의 마음이 닫혀 있어 못하는 것이지 고민하고 생각한다면 무엇이든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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