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가 마련한 강연회에서 동물에 관한 강연을 마친 후 질문을 받았다. 한 학생이 자신은 키우는 닭을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친구들이 개, 고양이만 반려동물이라고 한다고, 동네에 개 농장이 있는데 반려견과 식용견이 뭐가 다른지 궁금하다고 했다. 학생의 질문은 동물 문제를 보는 핵심 중의 하나이다.
다시 여름이다. 복날에 동물단체는 개식용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사람들은 보양식을 찾는 일상이 진행된다. 개식용 반대가 마뜩잖은 사람들이 내미는 카드는 주로 이렇다. “개만 먹지 말라고? 그럼 소, 닭, 돼지는?”, “식용견과 반려견은 다르니 먹어도 돼.” 여기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고, 이는 초등학생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복날에 개식용 반대 시위를 마친 사람들이 삼계탕을 먹으러 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이런 식의 “개는 인간의 친구니까 먹으면 안 돼.”라는 논리는 자신은 설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수 없다. 식용견과 반려견이 어떤 실질적인 차이도 없는 것처럼 개와 소, 닭, 돼지도 차이가 없다. 개고기 식당의 철장에 갇힌 식용견도 사람이 내민 손을 핥으며 꼬리를 흔들고, 소도 개처럼 감정이 있고, 돼지는 개만큼 똑똑하다. 다만 우리가 각각을 식용과 비식용으로 다르게 인식할 뿐이다. 이처럼 동물에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은 일관성이 없고, 부조리한 논리에 휘둘린다.
고기를 먹는 일이 오랜 세월 변화 없이 당연한 일로 반복되면서 우리는 육식주의에 대한 의심을 잃었고, 육식을 거부할 자유의지는 무력화되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제멋대로, 나라마다 동물을 식용과 비식용으로 나누고, 별다른 근거도 없이 육식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이렇듯 내면화된 육식주의 문제를 고민하는데 개식용은 좋은 소재이다. 그래서 현재의 동물단체는 개 ‘만’ 먹지 말자가 아니라 육식을 줄이고, 육식을 당연시하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한다.
개식용 반대를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하지만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키우는 사람이 천만 명인 상황에서 이는 자발적으로 일어난 요구이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쇼는 아무리 잔혹한 일이라도 관습이라면 사람들은 용인한다고 했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오래 전부터 해왔다고, 많은 사람들이 한다고 옳은 것이 아니다.
이미 반려동물과 함께 자라서 개식용이 관습이래도 용인할 생각이 없는 세대가 등장했고, 아마도 이들이 어른세대가 될 때쯤이면 자연스럽게 인식은 바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는 우리 안의 육식주의를 돌아보고, 생명의식을 높이는 주제로 삼아 논의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식용을 금지하는 게 올바르다.
주변에 어린 시절 개와 관련된 끔찍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반려견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지만 밥을 챙기고 함께 뛰놀던 개는 아이들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개를 몽둥이로 때려잡는 모습을 본 기억, 몽둥이질을 당하던 개가 도망쳤다가 아버지가 부르자 다가가다 다시 잡혀서 나무에 매달리는 걸 본 기억. 물론 지금이야 집개를 잡는 건 아니지만 개를 먹었다는 이야기에 반려인은 집의 개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식용은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은 폭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쓴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는 육식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데 대상화, 몰개성화, 이분화의 방법이 사용된다고 말한다. 이는 개식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들은 똑같은 개를 식용견이라고 부르며 먹어도 되는 물건처럼 ‘대상화’, ‘몰개성화’ 하고, 반려견과 다르다며 ‘이분화’하며 개식용에 찬성한다. 그렇다면 식용견은 개가 아니고 고기란 말인가. 하지만 누구도 반려견과 식용견이 다르다는 걸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다.
개를 먹는 사람들에게 반려견과 식용견이 다르지 않다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려면 개식용을 반대하는 사람들 또한 개와 소, 닭, 돼지가 다르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육식을 줄여나가야 한다. 나는 엉터리 채식인으로 사는데 고기의 유혹이 생길 때면 미국의 홀리스틱 수의사 리처드 피케른의 “우리는 너무 많은 육식동물과 살고 있다”는 말을 떠올린다. 반려인에게 책임감을 묻는 얼마나 뜨끔한 말인가. 반려동물과 살면서 우리는 모든 생명이 다르지 않음을 배웠다. 그렇다면 반려동물의 밥그릇에 올라가는 고기 또한 같은 생명임을 인정하고 반려인도 육식을 줄이는 책임감을 발휘해야 한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멜라니 조이, 모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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