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아닌 증권사가 공시
스와프 계약으로 제도 우회
최종수익 주체는 드러나지 않아
공매도 공시제 시행의 효과는 잠시 뿐이었다. 며칠 주춤하는가 싶던 공매도 비중은 다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공시제가 과연 투기적 공매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기는 한 건지, 공매도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당초 취지를 살리고는 있는 건지 제도의 실효성을 둘러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의 총 거래금액 대비 공매도 금액 비율은 지난 15일 4.69%를 기록했다. 공매도 공시제가 시행된 지난달 30일(3.98%)보다 0.71%포인트 높은 수치다. 공매도 비율은 공매도 투자자의 인적 사항이 처음 공개(5일ㆍ4.45%)된 이후에도 줄지 않고 꾸준히 올라 지난 8일에는 6.67%를 찍었다. 종목명ㆍ이름ㆍ생년월일ㆍ사업자 등록번호ㆍ국적 등 인적 사항 공개 부담에 공매도 비율이 줄어들 거란 시장의 예상과 정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이후 공매도 비율은 소폭 하락했으나 여전히 4~5%대에 머물고 있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하는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같은 종목을 더 떨어진 값에 사들여 되갚는 투자 방식이다. 주식을 판 뒤 결제일이 3일 후에 돌아오는 점을 이용한 전략으로, 주가가 많이 떨어질수록 차익을 크게 볼 수 있다. 그간 개인 투자자들은 “자금력을 지닌 대형 투자자들이 공매도로 주가를 과도하게 떨어트려 시장에 혼선을 주고 주가 왜곡을 불러왔다”고 반발해왔다.
공매도 공시제 시행은 이 같은 투기적 공매도를 억제하고, 공매도 투명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공매도 공시제에 따라 상장사 시가총액 대비 공매도 잔액 비율이 0.5%를 넘긴 투자자는 당일(공시의무 발생일)로부터 3거래일이 지난 뒤 인적 사항을 공시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해당 투자자 정보는 한국거래소 홈페이지에 게시된다. 추가 거래가 없어도 일별 공매도 잔고 비율이 0.5% 이상을 유지하면 매일 공시 의무가 발생한다.
하지만 공매도 공시제 도입 이후 공매도 비율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빌린 주식 수를 가리키는 대차잔고 규모 역시 공매도 공시제 시행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대차잔고 잔액은 잠시 60조원 밑으로 내려갔으나, 11일 이후에는 공매도 시행 전인 60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주가하락을 예상하고 공매도하려는 투자자가 많으면 대차거래도 늘어나기 때문에 대차잔고 규모는 통상 공매도의 선행지표로 쓰인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최종 수익을 얻는 실제 공매도 세력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공매도 공시제의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매도를 주도하는 헤지펀드는 증권사와 스와프 계약을 맺어 공매도 거래를 하는데, 이 때 공시 의무가 부과되는 대상은 헤지펀드가 아닌 증권사다. 현행 제도는 공매도를 한 주체에게 공시 의무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스와프 계약은 헤지펀드측이 공매도 대리인인 증권사에 수수료를 지불한 뒤 공매도 이익을 취하는 거래방식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현행 제도를 우회하는 방법이 존재해 제도 도입 취지가 전혀 달성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고, 김동영 삼성증권 연구원도 “공시된 인적 정보는 공매도 세력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공매도 공시제가 ‘꼬리 자르기’에 그치면서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 관계자는 “현행법상 근거가 없어 최종 수익자를 공시하라고 할 수 없고, 법을 개정해 최종 수익자를 공시하라고 해도 해외 헤지펀드에 대한 금융당국의 집행력은 한계가 있다”며 “불공정거래를 동반한 투기적 공매도 조사는 지금 제도로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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