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법사위ㆍ정무위 41명 전수조사

“도입해야” 73%... 반대 2명뿐
與의원 8명 “찬성” 입법 급물살
“무제한 배상해야” 43% 달해
“3배 이내”도 36%... 난항 예고
2010년 3월2일 도요타 차량의 급발진 문제로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사사키 신이치(오른쪽) 당시 도요타 품질보증 담당 부사장이 존 록펠러 상원 통상ㆍ과학ㆍ교통위원회 위원장과 악수를 하며 머리를 숙이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2010년 3월2일 도요타 차량의 급발진 문제로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사사키 신이치(오른쪽) 당시 도요타 품질보증 담당 부사장이 존 록펠러 상원 통상ㆍ과학ㆍ교통위원회 위원장과 악수를 하며 머리를 숙이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법화 논의가 20대 국회의 주요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제조물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 위한 4개 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해당 상임위 위원들은 제도 도입에 대다수가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손해배상 한도액 범위에 대해서는 양극으로 의견이 엇갈려 현재 발의된 법안을 근본부터 다시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8일 한국일보가 4개 관련 법안을 심의해야 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17명)와 정무위원회(24명) 소속 의원 41명을 전수조사해 징벌적 손배제 입법화에 대한 의견을 취합한 결과, 도입 찬성 의견이 30명(73.2%)으로 압도적이었다. 반대는 2명에 불과했으며 9명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19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가 기업 부담 등을 이유로 통과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압도적인 찬성 분위기는 놀라울 정도다. ‘제2의 옥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형사처벌 이외의 제도적 압박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ㆍ판매업체 책임자들에 대한 법원의 심판과 업체의 피해 배상이 이뤄지더라도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이윤을 초과하는 징벌적 손배제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사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옥시 영국 본사 CEO를 포함한 이사진 8명을 검찰에 형사고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정당별로 보면 두 상임위에 소속된 새누리당 의원 17명 중 찬성이 8명으로 반대(2명)보다 많았다. 기업의 이해를 비중있게 고려하는 보수정당의 입장에서는 다소 의외다. 7명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관련 법안을 발의한 야당에서는 반대 의견이 전무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7명 중 찬성이 15명, 입장보류가 2명이었고, 국민의당(5명)과 정의당(2명) 의원은 전원 찬성했다. 새누리당조차 찬성 의견이 많은데다 여소야대 상황까지 고려하면 20대 국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입법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두 상임위에서 심의해야 할 관련 법안은 박영선 더민주 의원이 대표발의한 민법 및 민사소송법 개정안과, 같은 당 백재현 최명길 오제세 의원이 각각 발의한 제조물 책임법 일부개정안이다.

지난 1999년 제조물 책임법 입법을 주도한 추미애 더민주 의원은 “당시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포함시키려고 했지만 사회 분위기상 역부족이었다”며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거치며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해 소비자 주권을 실현해야 할 적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찬성 의견을 낸 의원들은 기업의 불법행위를 억지하는 효과에 주목했다. 정무위원장인 이진복 새누리당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자에 대한 배상뿐 아니라 불법을 저지른 기업의 유사 행위 재발 방지에 효과가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성호 더민주 의원 역시 “국민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기업을 일벌백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보듯 현행 손해배상제도만으로는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안 되고 있다는 점도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핵심 근거다. 김영주 더민주 의원은 “현행 손해배상제도는 손해를 본 만큼만 배상해 주는데다, 손해발생의 원인과 손해액을 피해자에게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며 “기업이 도의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손해배상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 역시 “기업이 불법행위로 얻는 재산상 이익이 피해보상액보다 많아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사고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우원식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법안의 가장 결정적인 항목인 손해배상 한도에 대해서는 상임위원들의 의견이 크게 엇갈려 논의를 근본적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현재 발의된 3개의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은 손해배상 한도를 손해액의 3배 이내, 5배 이내, 12배 이내로 각각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의원들 설문조사에서는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13명(43.3%)으로 가장 많았다. 이미 발의된 법으로는 국민 요구를 충족할 수 없어 아예 새로운 법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3배 이내’를 지지하는 의견이 11명(36.7%)으로 그 뒤를 이었다.

법조계에서는 손배액을 3배 이내로 제한해서는 징벌적 효과가 극히 미미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반면 기업들은 제도 도입부터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라 부담이 크지 않은 ‘3배 이내’로 타협하려는 게 내심의 목표다. 때문에 손배액 범위 규정은 늘 첨예한 쟁점이었다. 그런데다 해당 상임위원들이 양 극단의 입장으로 팽팽하게 갈려 앞으로 법안 논의 과정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손해배상 한도에 제한을 두지 말자는 의원들은 우선 모든 사건에 동일한 비율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은 “손해배상액 한도를 미리 제한하면 불법을 저지른 기업들에 대한 충분한 처벌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재호 더민주 의원도 “국민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기업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는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손해배상액 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12배 이내를 주장한 금융감독원 출신 박찬대 더민주 의원은 “손해배상액을 3배 이내로 제한하는 것은 징벌적 손배로 분류하지도 않는다”면서 “손배액이 최소한 10배 정도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3배 이내’를 주장하는 의원들은 법안 처리 가능성과 부작용 최소화를 이유로 들었다. 심상정 정의당,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등은 “현실적으로 법안 통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고 말했다. 박용진 더민주 의원은 “현재 (제조물 외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돼 있는 법안들이 모두 3배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며 “도입 초기 시장 충격 완화를 위해서도 3배 이내가 적절하다”고 말했다. 현재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서는 징벌적 손배액 한도를 3배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찬성 의원 전원이 3배 이내를 선택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부분 기업활동의 위축과 남용 소지 등 부작용 최소화를 이유로 꼽았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