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로 활동 중인 서희(30)가 특별한 ‘서른 살 잔치’를 연다. 22~24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유스아메리카그랑프리(YAGP) 한국 예선을 유치하고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것. 지난해 말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자선기부단체 ‘서희재단’의 첫 프로젝트다. 서희는 2003년 장학 특전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이 대회 시니어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한 후 2005년 ABT에 입단해 수습단원, 군무, 솔리스트를 거쳐 2012년 동양인 최초로 수석무용수에 올랐다.
서희는 18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5년 전부터 가졌던 꿈”이라고 말했다. YAGP가 한국에서 예선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한국 학생들은 일본 중국 등 해외로 나가 예선을 치렀다. 비디오 심사 등을 통해 예선 참가자 80명이 확정됐다. “저는 (미국 유학 중이라)뉴욕에서 예선을 치렀어요. 콩쿠르 한번 준비하면 레슨비부터 의상, 비행기 티켓, 숙박, 현지 스튜디오 빌리는 일까지 챙겨야 할 일, 준비할 예산이 많아요. 이번에 부담이 조금은 덜 거예요.”
초등 6학년 때 우연히 발레를 접한 후 타고난 체형, 재능으로 곧바로 두각을 나타낸 서희가 이 콩쿠르에 출전한 건 학교(워싱턴 D.C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의 권유 때문이었다. 선화예중 재학 시절 전액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떠난 그는 학교에서 레슨비와 의상, 스튜디오를 지원한 덕분에 콩쿠르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머리에 쓰는 티아라부터 포인트 슈즈까지 제가 움직이면 전부 돈”이라고 농을 던진 그는 “전통 예술을 배우고 즐기는 데는 돈이 들 수밖에 없다. 예술 그 중에서도 발레 대중화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기부문화를 알리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년 전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사단법인을 만들고 대회를 개최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처음 해보는 거라 쉬운 게 아무 것도 없더라”며 가장 힘든 일로 자금 모금을 들었다. “발레단에만 있을 때는 한 번도 돈 달라는 처지가 돼 본적이 없어서 이 일이 어떤 일인지 몰랐던 거죠. 좋은 일에 쓰는 건데도 처음에는 ‘도와주세요’ 입이 안 떨어지는 거예요.”
공연이 없는 시간엔 미국 발레계의 후원자들을 찾아 다녔다. 최근에는 뉴욕의 설치미술가 강익중 화백과 동료 무용수들의 도움을 받아 맨해튼에서 펀딩 행사도 직접 열었다. “음식 메뉴, 경매 물품을 정하고 기부금 세금 영수증 발행하는 것까지” 직접 담당해 2만 달러를 모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해요. 행사 참여한 분들이 기부를 함으로써 받을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공연 티켓, 무용수와 점심, 사인 포인트 슈즈 같은 걸 경매로 붙였죠. 강익중 선생님도 작품을 기부해주셨고요.”
이렇게 모은 기부금으로 예선 참가자 중 일부를 장학생으로 선발해 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스쿨, 독일 베를린 국립 발레학교, 파리 오페라발레학교에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장학생 수나 본선 진출자 수는 아직 정해두지 않았다.
ABT는 파리오페라발레단, 영국 로열발레단과 함께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명문. 수석무용수는 발레의 주인공을 맡는 발레단의 간판으로, 서희는 ABT 9명의 수석무용수 중 서열로 세 번째다. 6주간의 발레단 휴가를 맞아 이번 행사 외에도 일본, 브라질에서 각각 ‘고집쟁이 딸’과 ‘백조의 호수’ ‘아폴로’의 주역으로 선다. 서희는 “지금이 최전성기는 아니지만 가까이 왔다고 생각한다”며 “발레계 흐름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지금이 (후배들을 돕는)적기”라고 말했다. “재단 일은 평생을 두고 잘 하고 싶은 일이에요. YAGP 한국 예선은 프로젝트 중 하나고요. 이 일을 시작으로 앞으로 공연이든, 장학사업이든 발레를 대중화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싶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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