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한방이 ‘한방’에 훅 갈 줄 몰랐다. 한의대를 졸업하고 노는 후배도 많다.” 최근 만난 한의사들이 토로하는 고충이다. 개원한 한의사들은 “우리는 몰라도 정년이 보장된 한의대 교수들은 철밥통”이라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철밥통이 깨지기 시작됐다.
1988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문을 연 강남경희한방병원이 올 3월 경영실적 저조로 문닫았다. 학원가와 아파트단지가 즐비한 대치동에서 한의원도 아니고 대학이 운영하는 한방병원이 문닫았다는 것은 충격에 가깝다. 1983년 11월 경북 경주시 용강동에 문을 연 동국대경주한방병원이 경영난 때문에 2005년 2월 동국대경주병원으로 편입됐다. 하지만 경영난에 허덕이다 한방병원이 아닌 한의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학병원 1층 구석에 존재감 없이 ‘한의원’ 간판이 달려 있는 모습은 한방병원 현주소다.
최근 경희대한방병원 진료과장들이 한방병원 축소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경희의료원 경영관리실에서 병원 구성원과 상의없이 ‘한방병원 병상효율화(안)’을 강행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의료원 측은 현재 5개 병동 225개 병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방병원을 3개 병동 171개 병상으로 축소할 방침이다. 국내 한방병원 중 최고 권위와 브랜드파워를 자랑한 경희대한방병원마저 축소를 검토할 정도로 한방은 위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5일부터 전국 13개 병원에서 의과ㆍ한의과를 모두 이용하는 경우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사ㆍ한의사 협진 활성화 시범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의학ㆍ한의학적 판단에 따라 협진을 통해 치료해도 한쪽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협진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었지만 시범사업 기간 중에는 의과병원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와 한방병원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에 대해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한방병원들은 시범사업에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방병원 관계자들은 “외래ㆍ입원환자가 계속 감소하고 있어 시범사업으로 인한 효과는 미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진정 한방을 살릴 마음이 있다면 X선, 초음파검사 등 현대의료기기 사용, 건강보험 확대 적용 등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한방 활성화를 위해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의사와 한의사 눈치만 살펴서는 산적한 현안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지부가 꺼내든 의사ㆍ한의사 협진 시범사업 카드를 ‘임시방편’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한의사 요구를 전격 수용하면 한방이 다시 살아날까. “한방의 임상적 안전성ㆍ유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은 비단 대한의사협회만의 주장이 아니다. 한약보다 건강기능식품을 선호하고, 한방의 치료효과를 믿지 못하는 국민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국민 신뢰를 얻으면 한방의 위기도 극복될 것이다. 우는 놈 떡 하나 더 줄 것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방이 살 수 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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