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 스코틀랜드 턴베리 아일사 코스에서 열린 제106회 디 오픈 챔피언십 4라운드. 전날까지 1타차 1ㆍ2위를 달렸던 ‘디 오픈의 사나이’ 톰 왓슨(미국)과 ‘골프 황제’ 잭 니클라우스(미국)의 대혈투가 펼쳐졌다. 3라운까지 이들은 3위와 10타 차가 날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를 했다.
하이라이트는 4라운드 18번홀. 엎치락뒤치락하며 17번홀까지 1타를 앞섰던 왓슨은 18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홀 가깝게 붙이면서 대혈투의 종지부를 찍는 듯 했다. 하지만 티샷을 러프로 보낸 니클라우스는 쉽게 물러서지 않고 11m짜리 버디 퍼트를 성공하며 왓슨을 압박했다. 그러나 왓슨은 니클라우스의 압박에도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1타차 짜릿한 우승을 차지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그 태양만큼 뜨겁게 펼쳐진 둘의 명승부를 두고 골프 팬들은 1946년 그레고리 펙이 출연했던 서부영화의 제목을 따 ‘백주의 결투’(Duel in the Sun)라는 이름을 붙였다.
18일(한국시간) 스코틀랜드 로열 트룬 골프장에서 열린 제145회 디 오픈(파71ㆍ7,064야드) 4라운드도 그랬다. 헨릭 스텐손(40ㆍ스웨덴)과 필 미켈슨(46ㆍ미국) 두 40대 베테랑은 39년 전 왓슨과 니클라우스의 대결과 견줄만한 명승부를 펼쳤다.
3라운드가 끝났을 때 스텐손이 12언더파로 1위, 미켈슨이 11언더파로 2위였다. 3위 빌 하스(34ㆍ미국)는 6언더파. 마지막날 경기는 일찌감치 스텐손과 미켈슨의 매치플레이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스텐손과 미켈슨은 챔피언 조에서 거의 매 홀 버디를 주고받는 난타전을 벌였다. 스텐손이 2번 홀부터 내리 3홀 연속 버디를 하자 미켈슨은 버디와 이글로 맞섰다. 스텐손은 중거리 퍼트를 쏙쏙 집어넣은 신들린 퍼팅 감각을 앞세워 타수를 줄여 나갔고, 미켈슨은 노련한 플레이와 환상적인 아이언 샷으로 응수했다. 전반 9홀에서 이들은 버디 7개와 이글 1개를 합작했다.
어려운 후반에서 점수를 잃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신들린 버디 행진은 이어졌다. 이들 모두 10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냈다. 11번홀에서 보기를 한 스텐손은 14번부터 16번까지 3연속 버디를 하며 19언더파로 도망갔다. 미켈슨은 파 5인 16번홀에서 2온에 성공한 뒤 시도한 회심의 이글 퍼트가 홀을 살짝 스쳐 지나가 추격에 실패했다. 221야드의 파 3홀인 17번 홀에서 스텐손은 핀 2m 옆에 티샷을 붙이면서 사실상 승부를 마감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는 제145회 디 오픈 챔피언십을 두고 ‘투 맨 쇼’라고 표현했다. 숨 막히는 결투를 마친 두 남자는 18번 홀 그린에서 손을 맞잡은 뒤 포옹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스텐손이 클라레 저그(디오픈 우승컵)를 들어올렸다. 스텐손은 최종라운드 8언더파 63타, 합계 20언더파 264타로 필 미켈슨을 3타 차로 눌렀다. 4라운드 합계 264타는 1993년 로열 세인트 조지(파72)에서 열린 대회 때 그렉 노먼(호주)이 세운 이 대회 최저타 267타를 3타 경신한 것이다. 언더파 기준으로도 2000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파72)에서 열린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미국)가 세운 19언더파에 한 타 앞섰다.
스텐손은 마흔 살이 되어 첫 메이저 우승컵에 입을 맞췄고 스웨덴 선수 첫 메이저 우승도 함께 일궜다. 스텐손은 클라레 저그에 입을 맞춘 후 “오늘 환상적인 대전이었다. 좋은 경기를 펼쳐준 미켈슨에게 고맙다”며 명승부를 함께 한 미켈슨에 대한 감사 표시를 잊지 않았다.
J.B.홈스(34ㆍ미국)는 미켈슨에 12타 뒤진 6언더파 278타로 3위에 올랐고 5언더파 279타를 친 스티브 스트리커(49ㆍ미국)가 4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김경태(30ㆍ신한금융그룹)는 공동 53위(7오버파 291타), 안병훈(25ㆍCJ그룹)은 공동 59위(9오버파 293타), 이수민(23ㆍCJ오쇼핑)은 공동 79위(18오버파 302타)로 대회를 마쳤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