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무리하게 천주교 원로 사제를 중앙윤리위원장으로 밀어붙였다가 닷새 만에 무산되는 망신을 당했다. 교회법상 사제의 정치활동은 금지돼 있어 염수정 추기경이 직접 나서 불허한 것이다. 윤리위원장 인선 무산 사태는 부구욱 영산대 총장에 이어 두 번째다.
18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새누리당 윤리위원장에 내정됐던 여형구(73ㆍ세례명 미카엘) 신부가 당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당에 전달했다. 이는 여 신부가 속한 서울대교구장인 염 추기경의 불허 방침에 따른 것이다.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인 허영엽 신부는 본보 통화에서 “당의 발표 직후 휴가 중인 염 추기경이 사제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교회법을 들어 불허했다”며 “재고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교회법은 제287조에서 “사제는 정당이나 노동조합 지도층에서 능동적 역할을 맡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리위원장이 무보수 명예직이라 하더라도 정당의 틀 안에서 맡는 일이므로 명백한 정치 참여라고 본 것이다.
새누리당은 한 외부 혁신비대위원의 추천으로 여 신부에게 윤리위원장직을 제안했다. 여 신부는 당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답했는데도 당이 지난 13일 인선을 기정사실화해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아 대변인은 “사임을 수용하기로 했다. 조속히 새로 인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새누리당은 부구욱 영산대 총장을 윤리위원장에 내정했으나, 딸이 같은 대학 자문 변호사로 위촉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부 총장이 자진사퇴했다. 한 당직자는 “후임 윤리위원장 후보를 찾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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