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강원 정선군 북평면에서 1톤 트럭과 그랜저 승용차가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그랜저에 타고 있던 일가족 4명 중 운전자 A씨(35)와 아내(30)는 숨지고 생후 30개월과 8개월에 불과한 두 아이만 살아 남았습니다. 두 아이도 현재 각각 두개골 골절로 인한 뇌출혈, 팔ㆍ다리 골절이라는 중상해를 입고 원주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입니다. 이 안타까운 사연은 숨진 부모의 지인이 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연을 올리면서 알려졌습니다.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금세 논란으로 번졌습니다. 두 아이에 대한 치료를 둘러싸고 사고 차량의 자동차보험을 취급한 현대해상 측의 사고 처리 태도가 비난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사망한 A씨의 지인으로 알려진 전모씨(35)는 SNS를 통해 “신생아(생후 8개월)에게는 보험사 약관상 식물인간 및 사지 마비로 인한 100% 장애 판정을 받지 않은 상태라 간병비를 못 주겠다고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어 “현대해상이라는 보험회사는 교통사고로 부모 모두가 사망한 아이들에게 간병비를 받으려면 소송을 제기하여 판사의 판결대로 받아가라고 한다”며 “아이들이 부모 잃은 것도 억울한데 이런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게 가슴이 미어집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글은 급속히 온라인 상에 퍼졌고 누리꾼들은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 호소 드립니다’, ‘약관이 그렇더라도 예외 규정이라도 둬야 한다’, ‘보험 가입 때 말과 보상 때 말이 다른 보험사’ 등의 반응들을 쏟아냈습니다.
이런 현대해상의 행태는 금융당국에도 전해졌습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18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중환자실에 있는 상황에서 재판을 받으라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는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며 “전날 소식을 접하고 18일 오전, 간병비 지급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주문했다”고 말했습니다.
비난 여론과 금융당국의 주문 때문이었을까요? 현대해상은 이날 뒤늦게 두 아이들에 대한 간병비를 지급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원래 약관 판결에 따라 갈릴 수는 있는데 상황이 안타까워 간병비도 100%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며 “(장애 100%, 재판 받으라 등) 문제가 된 부분은 사고 지역 담당자가 유가족에게 약관에 따른 보상 기준을 설명한 것인데 오해를 불렀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100% 장애 판정은 시간이 걸리지만 아이들에 대한 문제라 빨리 판단해서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보통 보험사에서는 대형 사고의 경우 보상 문제는 본사가 담당하는데 현장조사와 본사결정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이런 문제가 불거진 점에서 현대해상으로서는 일정 억울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중환자실의 경우 간병인이 들어갈 수 없어 일반병실로 옮기면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형 사고일수록 보험금 지급을 놓고 유가족과 승강이를 벌이는 보험사들의 행태를 고려하면 과연 비난 여론과 당국의 주문이 없었어도 이런 결정을 했을까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약관상 간병비 지급 대상인 ‘장애 100%’는 실제로는 식물인간에 준하는 상태여서 보험사로서는 거의 지급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결국 소비자들은 재판을 통해서 간병비를 얻어낼 수밖에 없는데, 그 지난한 과정이 힘들어 보험사가 제시한 극히 일부의 보상금을 받고 마는 유가족도 부지기수입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간 추진해 온 간병비 지급 범위 확대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행 약관 상 식물인간 수준에 준하는 장애에만 한정된 간병비 지급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쪼록 두 아이가 쾌유하길 간절히 빌며, 다시는 이런 문제로 논란이 되지 않길 기대해봅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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