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최초의 현대식 공원인 도쿄 우에노 공원에는 국립서양미술관이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부르델의 ‘활 쏘는 헤라클레스’ 등 내로라하는 소장품 목록을 자랑하는 이 미술관의 설계자는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다. 이 건물은 생전에 그가 완공한 유일한 미술관이자 일본에 있는 단 하나의 르 코르뷔지에 작품이다.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을 포함해 전세계 7개국에 지어진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 17개가 17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프랑스가 주도해 일본, 스위스, 벨기에, 독일, 아르헨티나, 인도 등 7개국이 연합해 등재를 추진한 결과다. 대륙을 넘어 산재해 있는 건축물을 아울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다.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독일의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근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 산업화, 기계화로 곳곳에서 변화의 바람이 거셌던 20세기 초, 르 코르뷔지에는 기존 건축의 개념을 뒤집고 국제적인 합리주의 건축사상의 기틀을 닦았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더 효율적인 공간에서 살 수 있는” 건축을 고심했고, 벽돌을 쌓아 올리는 조적식(組積式) 공법 대신 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내세웠다. 수치화, 표준화를 통한 효율성, 합리성에 기반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양식은 개별 건물을 넘어 전세계 도시 풍경에 깊은 족적을 새겼다.
이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그 족적을 새삼 확인하는 것이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그와 함께 3대 거장으로 묶이는 로이드 라이트와 반 데어 로에의 경우 등재는커녕 추진 움직임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 뒤엔 르 코르뷔지에 건물들이 겪은 오랜 수난사가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초창기 작품이자 그의 건축 어휘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평가 받는 파리 근교의 사부아 주택(Villa Savoye)는 1931년 완공된 이후 독일군과 연합군에 차례로 훼손 당하다가 1958년에는 철거 위기에 처했다. 건축가들의 반대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지만 프랑스 바깥에 지어진 르 코르뷔지에 건물의 안위까지 보장할 순 없었다.
프랑스 문화부와 르 코르뷔지에 재단은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2000년대 초반부터 잠정목록(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위한 사전 예비단계)에 프랑스 내 건물뿐 아니라 전세계에 퍼져 있는 건물을 포함시키는 계획을 추진했다.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외 벨기에 앤트워프에 있는 귀트 주택(Maison Guiette) 등이 포함됐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을 보유한 국가들이 호응을 보이자 프랑스는 여러 차례 만남을 주선하고 위원회를 꾸려 연합 등재를 진전시켰다. 2008년 처음 신청서를 냈으나 등재에 실패하고 2010년 재도전했으나 다시 미끄러졌다. 이번 등재 성공은 삼수만의 합격인 셈이다.
유네스코 심사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르 코르뷔지에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 중 한 명이며 그의 작품과 연구는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면서 “그는 모더니즘 건축의 기술과 개념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건축과 도시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켰다”고 평했다. 이종건 건축비평가는 “르 코르뷔지에뿐 아니라 모든 위대한 건축가들의 작업은 보존할 가치가 있지만 이번 등재는 특히 건축가의 작품을 이해하고 지키려는 사회적 실천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말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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