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부천영화제)가 21일 부천시청 잔디광장에서 스무 번째 막을 올린다. 지난 5월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한 미국 영화 ‘캡틴 판타스틱’(감독 맷 로스)을 개막작으로 49개국 302편(장편 189편·단편 113편)이 상영된다. ‘부산행’의 전편에 해당하는 애니메이션 ‘서울역’(감독 연상호)이 31일 폐막을 장식한다.
지난해보다 67편이 늘어난 상영작들은 질적으로도 눈에 띈다. 대가들의 최신 수작이 여럿 포함돼 있고, 유럽과 남미, 일본 등에서도 온 개성 넘치는 장르영화도 많다. 부천영화제의 지난 시간 등을 돌아볼 수 있는 여러 형식의 특별전도 많아 골라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취향에 맞는 영화들을 골라 집중 공략하는 것도 영화제를 알차게 보내는 좋은 방법이다. 세 가지 주제로 부천영화제 즐기기를 소개한다.
대가들의 최신작 맛보기
유명 감독들의 최신작들만 골라봐도 포만감을 느낄 듯. 일본 영화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사건’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최신작이다. 형사 출신의 범죄심리학자가 이웃집 남자의 비밀을 알게 된 뒤부터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공포영화다. 기괴한 이미지로 공포를 그려온 구로사와 감독의 장기가 발휘됐다는 평을 듣는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됐던 ‘네온 데몬’(니콜라스 윈딩 레픈’도 주목해야 할 영화다. ‘드라이브’ 등으로 국내에도 열성 팬을 거느린 윈딩 레픈 감독이 여자 모델들 사이의 목숨 건 경쟁을 이야기 줄기 삼아 공포를 빚어낸다.
일본 감독 미이케 다카시의 신작 ‘테라포마스’는 독특한 소재와 기이한 표현을 선호하는 관객들이 특히 좋아할 작품이다. 화성을 배경으로 진화한 바퀴벌레와 인간의 사투를 그린다.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기발한 방식으로 묘사해온 다카시 감독의 개성을 음미할 수 있다.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인 제프 니콜스의 신작 ‘미드나잇 스페셜’도 만날 수 있다. 초능력을 지닌 아이와 그를 악용하려는 극단적 종교 집단, 아이를 조사하려는 정부, 아이를 구하려는 아버지의 쫓고 쫓기는 모습을 담았다.
‘메이드 인 홍콩’으로 잘 알려진 프루트 첸의 ‘나는 과거를 살인한다’도 부천을 찾는다. 왕년의 홍콩 액션배우 훙진바오(홍금보)가 연출과 주연을 겸한 ‘홍금보의 보디가드’, ‘도신’ 등 코미디로 1990년대를 풍미했던 홍콩 감독 왕징(왕정)의 신작 ‘도성풍운3’, 일본의 김기덕으로 불리는 소노 시온 감독의 ‘소곤소곤 별’도 실망하지 않을 선택이다.
부천, 고몽 그리고 보위
영화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영화들만 만나도 좋다. 부천영화제는 20주년을 맞아 과거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영화를 선정해 ‘다시 보는 판타스틱 걸작선 20편’이라는 이름으로 상영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킹덤’,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의 ‘사무라이 픽션’, 토드 헤인스 감독의 ‘벨벳 골드마인’,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링’, 대런 애노로프스키 감독의 ‘레퀴엠’,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렛미인’, 자크 반 도마엘 감독의 ‘미스터 노바디’ 등 제목만으로도 가슴 설렐 영화들이 상영 명단에 올랐다. 나홍진 감독의 장편데뷔작 ‘추격자’와 단편영화 ‘한’도 만날 수 있다.
프랑스 유명 영화사 고몽의 대표작들을 상영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영화가 탄생한 1895년 설립된 고몽은 121년 동안 1,000편 가량의 영화를 만들며 세계 영화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뤽 베송의 대표작인 ‘그랑 블루’와 ‘서브웨이’ ‘니키타’를 비롯해 공포영화의 고전이 된 ‘얼굴 없는 눈’(조르주 프랑주) 등 11편이 상영된다.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영국 가수 데이빗 보위를 돌아보는 추모전도 열린다. 일본 감독 겸 배우 기타노 다케시와 호흡을 맞춘 ‘전장의 크리스마스’ 등 4편을 모았다.
나카시마 데쓰야 만나기
일본 영화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자리도 있다. ‘불량공주 모모코’로 한국 관객에 알려진 뒤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으로 열성 팬층을 구축한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이 부천영화제 참석을 위해 첫 공식 방한한다. 광고계에서 잔뼈가 굵은 나카시마 감독은 빼어난 영상미와 빠른 이야기 전개로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만들어 왔다. ‘불량공주 모모코’와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고백’ ‘갈증’ 4편이 그의 방한을 맞아 상영된다. 23일 오후 ‘고백’ 상영 뒤엔 나카시마 감독이 자신의 인생과 영화관을 밝히는 마스터 클래스 행사도 열린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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