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례 따라 야당이 먼저 全大 치러
대선 후보 추인 기능이 주된 기능
부통령, 대통령 유고시 승계 1순위
정ㆍ부통령 후보 조합 중요 요소로
당내 경쟁 마치고 단결 모습에
全大 이후 평균 10% 지지율 상승

도널드 트럼프를 공화당 공식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전당대회가 오늘부터 열린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추대하는 민주당 행사는 다음 주에 예정돼 있다. 관례에 따라 야당(공화당)이 먼저 그리고 여당이 나중에 연다.
전당대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무엇보다도 대통령 후보를 최종 확정하는 일이다. 미국 건국 초창기에는 연방 하원의 의원 총회에서 후보를 뽑았다. 새로이 세워진 연방제 국가의 권력을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사이에서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연방의회에서 ‘연방파’(Federalists)와 ‘반 연방파’(Anti-Federalists)로 갈렸고, 이것이 정당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후 여러 번의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대중 민주주의가 발전되었고, 공화당이 창당된 후인 1856년부터는 양당 모두 전국적인 전당대회를 통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해 왔다.
물론 1960~70년대 정당개혁이 있기 이전에는 주별로 흩어진 지방 정당 조직의 지도자들이 전당 대회에서 후보 지명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개의 경우 후보들 간 ‘합종연횡’과정을 거친 뒤에야 전당대회 당일에 가서야 비로소 누가 양당의 후보가 될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다가 후보 선출 과정에서 평 당원 및 일반 국민의 참여를 확대시키는 일련의 개혁을 거친 이후, 전당대회는 이미 정해진 대통령 후보를 추인하는 기능을 하게끔 변모되었다.
전당대회의 두 번째 주요 기능은 부통령 후보를 정하는 일이다. 미국 헌법에서 정한 부통령의 권한은 연방 상원 의장이 되는 것과 대통령 유고 시 그 직을 승계하는 첫 번째 인물이 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 후보뿐만 아니라 부통령 후보를 같이 보는 경향이 있다. 또 44명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3분의1 정도인 14명(특히 최근 9명 대통령 중에서는 4명)은 부통령을 지낸 경험이 있다. 5명은 대통령으로 다시 출마해서 당선된 것이지만, 8명은 대통령이 재임 당시 사망해서, 그리고 1명은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사임해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따라서 두 당의 대통령 후보는 자신의 ‘러닝 메이트’를 고를 때 신중을 기한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여러 고려 요소 중 가장 중요시 된 것은 출신 지역이다. 1960년 민주당에서 동부 출신의 존 F. 케네디가 후보가 되었을 때 부통령 후보로 남부 텍사스 출신 상원의원 린든 존슨을 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공화당에서는 부통령 후보로 케네디의 고향인 매사추세츠 출신 헨리 로지 상원의원을 지명해 맞불작전까지도 불사했었다.
보다 최근에는 특정지역의 지지를 끌어오기보다는 전 지역을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을 선호하고 있다. 이에 정ㆍ부통령 후보 조합의 정책ㆍ이념 성향이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2008년 중도적 이념성향을 가진 존 메케인 공화당 후보는 소위 ‘집토끼’를 붙잡기 위해 상당히 보수적인 사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1980년에는 강한 보수를 대변하는 로널드 레이건 후보가 이념적으로 중도적이던 조지 H. 부시를 러닝메이트로 골랐으며, 조지 H. 부시가 1988년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에는 보수 정치인 댄 퀘일을 부통령 후보로 정했다.
전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이지만 미국에서도 기성 정치인에 대한 싫증과 혐오 때문에 정치 신인에 가까운 인물이 대권 주자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럴 때는 통치 경험이 많은 인물들 중에서 부통령 후보가 선택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등에 업고 당선될 때, 오랜 기간 상원 외교위원을 지낸 조 바이든 의원을 지명한 것이 그 예이다. 2000년 대선의 공화당 정ㆍ부통령 후보(조지 W.부시ㆍ딕 체니)와 1992년 민주당 정ㆍ부통령 후보(빌 클린턴ㆍ앨 고어)도 비슷한 경우이다.
반대로 대통령 후보가 노쇠한 이미지이면 소위 ‘젊은 피’를 부통령 후보로 고르기도 했다. 2012년 공화당의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 2004년 민주당의 존 에드워즈 부통령 후보 모두 대통령 후보였던 밋 롬니와 존 케리의 낡은 이미지를 탈색시키기 위해 뽑힌 ‘잘 나가는 차세대 지도자’들이다.
표: 1960년 이후 민주-공화 양당의 부통령 후보와 지명이유
주: 승리 후보가 굵은 글씨체. *이글턴 부통령 후보가 선거기간 중 정신병 전력으로 사퇴 후 쉬리버 지명.
전당대회의 세 번째 중요 기능은 대선 전쟁의 시동을 본격적으로 거는 일이다. 양당 모두 당내 경선 중 벌어진 같은 당 후보들간의 과열 경쟁을 보기 좋게 마무리하고, 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일치 단결하는 모습을 국민들 앞에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민주ㆍ공화 양당은 이러한 역할을 아주 성공적으로 달성했으며, 각 정당의 전당대회 직후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을 크게 올렸다.
이런 현상을 ‘전당대회 효과’(convention bounce)라고 부른다. 1968년 이후 야당에서는 평균 11 %포인트, 여당에서는 평균 10%포인트 정도의 지지율 상승 효과가 있었다. 전당 대회를 전후로 대통령 후보들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일반 국민들의 주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또 전당 대회를 기점으로 경선 패배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의 정당 출신 후보를 지지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이러한 효과가 지지율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ㆍ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가 점점 더 빨리 결정되는 경향이 있고, 미디어의 발전으로 전당 대회 훨씬 이전부터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있어서 전당대회 효과가 차츰 줄어드는 추세이다. 2012년 선거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전당대회 이후 지지율을 약 2%포인트만 늘리는 데에 그쳤고,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전당대회 이후 지지율이 1%포인트 감소하기까지 했다.
전당대회의 마지막 기능은 정당의 강령(platform)을 승인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민주ㆍ공화당의 약속이자 선언인데, 대통령 후보를 정하기 이전에 여러 단계 회의를 거쳐 확정된다. 과거에는 당원과 당 지도자들이 토론을 거쳐 당의 향방을 정하는 등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했지만, 최근에는 대통령 후보의 공약을 추인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되는 형식으로 변화했다.
박홍민ㆍ미 위스콘신대(밀워키)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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