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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의 수도’에서 한국인이 스타가 된 진짜 이유는?

입력
2016.07.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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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열리는 칼리축제는 파파라치도 울고 갈 '그림 되는 시스터'의 집결지다.
8월에 열리는 칼리축제는 파파라치도 울고 갈 '그림 되는 시스터'의 집결지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돼요?"

"절요? 그럼요!"

중남미 여행을 하면서 백수인 내게도 무보수 직업이 생겼다. 바로 '무명씨의 모델 되기'. 처음엔 예삿일로 넘겼다. 왜 나 (따위)와 사진을 찍는지 묻지 않았다. 중남미에도 중국집이 점령했는데 굳이 눈 찢어진 동양인(난 내 눈이 큰 편이라 생각한다, 아무튼)에게 왜? 하나 찍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왜 꺾으랴. 난 쉬운 여자였다. 입이 찢어져라 웃어주었다. 하지만 모든 문제의 화근처럼 난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중남미에서 난 제일 잘 나가', '난 사실 미인이었어.', '한국인, 보고 있나? 확실히 네 눈이 삔 거야!'류의 망측한 착각의 늪이었다.

대한민국 평균 미녀에서 열외인 내가 치유할 수 없는 '스타병'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대체 왜일까. 팬심에 의거한 행동은 대체로 묘연하다. 사진을 찍은 그들은 부리나케 사라진다. 어김없이 미니어처가 된 그들의 등짝에 옹알이를 한다. "내 이름은 몰라도 되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아?" "아악... 악수라도 할래?" 급기야 "다음엔 거절하고 말테야"라며 으르렁거린다. 그들은 오직 '희귀한' 외모와의 기념 사진을 얻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즉, 날 스타로 모실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유는 베일에 싸인 채 난 스타병 말기 진단을 받았다. 콜롬비아 서남부에 있는 산티아고 데 칼리(이하 '칼리')에서다. 칼리는 본래 '살사의 수도'란 야릇한 별명이 있다. 일반인이 전부 살사 댄서요, 매일 거리는 허리 꺾는 댄서의 옷자락으로 물들 거란 착각은 금지다. 매년 광란의 12월 살사 축제로 인해 다소 허세 넘치는 별명이나, 리듬에 목숨 거는 아프리카의 문화 유산으로 풍부한 도시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특히 칼리 사람을 뜻하는 칼레뇨(Caleno)의 패기는 날던 새도 떨어뜨린다.

"칼리는 칼리지, 콜롬비아 나머지는 산이잖아. 어이, 듣고 있나?"

태평양에 터를 잡은 노예의 애환에서 추출된 위대한 유산. 아프리칸 리듬이 달빛 아래 논스톱!
태평양에 터를 잡은 노예의 애환에서 추출된 위대한 유산. 아프리칸 리듬이 달빛 아래 논스톱!

▦[영상] Full of Passion in Cali

칼리에선 매년 8월이면 칼레뇨의 자존심을 드높이는 퍼시픽 페트로니오 알바레즈 음악축제(Festival de Musica del Pacifico Petronio Alvarez)가 살사에 대적한다. 태평양에 터를 잡은 아프리칸 콜롬비아계 민속음악의 지주, 페트로니오 알바레즈에 헌정하며 시작한 20년 된 축제다. 소식을 듣자마자 한때 클럽 죽순이었던 원초적 댄싱 본능이 발동하는 기분이었다. 100개 그룹 이상의 뮤지션 공연이라니, 두기둥둥~ 격정의 라틴 퍼커션과 울림 좋은 마림바! 무의식적으로 차차차(!) 스텝을 밟았다. 무장강도의 무대가 되는 콜롬비아의 밤도 우리의 낮보다 아름다우리라. 실제 상황이었다. 낮에는 태양을 피해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야외축제 현장으로 출동하는 박쥐의 삶을 거듭했다.

1년 내내 참아왔던 모든 콘텐츠를 쏟아 붓는 축제. 메인 무대 외 상설 무대도 홀대하지 않는다.
1년 내내 참아왔던 모든 콘텐츠를 쏟아 붓는 축제. 메인 무대 외 상설 무대도 홀대하지 않는다.
이곳을 주무르는 전통주인 아레촌(arrechón)과 비체(Viche). 발기 부전의 특효약으로 알려진 아레촌('흥분한'이란 뜻)은 연거푸 마셨다간 훅 가버리는 술이다.
이곳을 주무르는 전통주인 아레촌(arrechón)과 비체(Viche). 발기 부전의 특효약으로 알려진 아레촌('흥분한'이란 뜻)은 연거푸 마셨다간 훅 가버리는 술이다.
수전증 없는 페이스 페인팅 아티스트의 낮과 밤.
수전증 없는 페이스 페인팅 아티스트의 낮과 밤.
하얗고 파란 손수건을 흔들면서, 태평양 청춘의 물살은 요동친다.
하얗고 파란 손수건을 흔들면서, 태평양 청춘의 물살은 요동친다.
뭐가 문제야? 이곳의 아노미는 긍정적이다.
뭐가 문제야? 이곳의 아노미는 긍정적이다.

축제는 '판아메리카나' 대형 경기장을 전세냈다. 공연 무대로 발들이기 전, 여느 축제처럼 지역 음식을 풀어놓은 노상 식당과 민속 독주를 진열한 바, 핸드크래프트 쇼핑 부스, 행상인의 지뢰밭이 깔려 있었다. 애석하게도 스타병 중증인 내겐 지뢰보다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360도 공회전하며 날 과녁으로 삼은 레이저 눈빛 탓이다. 보고 또 보고, 위아래로 훑는, ‘흑형’들의 이글거리는 그 시선. 자기들끼리 날 '치나(중국인)'라 수군거리는 건(때론 일본인과 중국인 사이를 경주하며 저들끼리 말싸움을 한다)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난 그들을 의식하며, 줄곧 화장실도 안 갈 여자 같은 표정을 지어야 했다. 가식의 기념 촬영은 이어지고, 급기야 대기자가 줄까지 섰다. 묘한 아우라의 아줌마는 미스코리아의 포즈까지 주문했다. 스타는 팬의 요구에 무조건 응해야 하는 공인이어야 할까?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연예인 걱정을 했다. 괄약근까지 조이는 10차례 이상 촬영 후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축제에 동행한 프랑스인 매튜는 절여진 배추 신세가 된 내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이제부터 장당 1,000콜롬비안 페소(약400원)를 받자!" 그 와중에도 난 몸값을 올려 2,000페소가 되면 참 좋겠다는 발랄한 생각을 했다.

그뿐이랴. 급기야 축제 공식 촬영팀이 인터뷰를 요청했다. 비디오 카메라맨 앞에서 어디에 쓰이는지 모를 '묻지마' 인터뷰를 했다. 프레스 팔찌(공연 내 어디든 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특권)를 뇌물로 받은 후 영어와 한국어로 축제에 대해 나불댔다. 이후 저질 체력 때문에, 마지막 날 축제엔 정작 참석하지 못했다. 아쉬움을 시내의 거리 공연으로 달래던 다음날 새벽. 엉덩이를 씰룩씰룩, 족보 없는 댄스에 다시 물이 올랐을 때 한 여자가 말을 걸었다. 날 봤단다. 어디에서??

"축제에서. 큰 전광판에 네 인터뷰가 나오던 걸? 넌 성공한 거야!"

콰과쾅~ 나의 스타병은 드디어 폭발했다. 내일은 묵혀둔 선글라스를 써야겠다고 맘 먹었다. 비즈니스에 영특한 매튜는 콜롬비아 보고타에 숙박 제공은 물론 일당 600달러를 주는 모델 에이전시를 소개하겠다는 말로, 날 비행기를 태워 아예 우주로 보내버렸다. 탕탕을 쳐다보니 이미 짭짤한 수입을 얻은 이후를 상상하는 듯했다. 입이 딱 초승달이었다. 스타도 눈을 뜬 아침, 매튜의 아내인 파올라와 이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콜롬비아 출신인 그녀야말로, '왜'에 대한 진정한 답을 줄 수 있으리라.

"그냥... 재미있잖아."

나 to the 재미..., 재미 to the 나.... 불치병으로 보였던 나의 스타병은 그녀의 한마디에 30초 만에 완쾌되었다. 어쩌면 우린 생각보다 너무 많은 이유를 달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철퍼덕.

▦Festival de Musica del Pacifico Petronio Alvarez

기간 8월 8일~15일

장소 Unidad Deportiva Alberto Galindo

마림바가 모태가 되는 칼리의 민속음악축제는 냉소주의자도 즐길만한 몸짓과 타악기의 지독한 혼연일체다. 올해 이 축제는 브라질 리우올림픽에 완벽히 대적할 8월 8일부터 시작한다. 칼레뇨의 자부심이 더 크고 치밀해졌다. 지난 5월부터 SNS로 포스터를 선정하기 시작해 이미 지역 예선인 부에나벤투라와 보고타 등의 축제는 종료된 상황. 명실공히 뮤직 어워드이나 사실상 승자가 누구인지는 주최측조차 관심 없다. 영 자신감 회복이 어렵다면, 8월의 칼리를 맞이하라. 육신은 이곳에, 영혼은 TV 속 올림픽으로! 완벽한 8월이 될 수 있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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