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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한 기색에도… 유연했던 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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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한 기색에도… 유연했던 조성진

입력
2016.07.1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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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이 15일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서 쇼팽 협주곡 1번을 협연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조성진이 15일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서 쇼팽 협주곡 1번을 협연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시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쇼팽 콩쿠르 우승의 반대급부인 유명세와 과도한 스케줄에 시달린 탓이었을까? 지난 금요일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의 협연자로 나선 조성진의 연주는 5개월 전 같은 무대에서와는 사뭇 달랐다. 분명 그간의 성숙과 발전을 확인할 수 있는 연주였지만, 한편으론 일말의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얼마간 피로한 기색이 묻어난 연주였다고 하면 적당한 표현일까?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첫 악장. 긴 오케스트라 전주가 끝나고 피아노가 첫 화음을 울릴 때만 해도 ‘그 사이 음색이 더 여물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일련의 강한 화음 및 빠른 패시지 연타를 들으면서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조성진 특유의 터치에서 발산되는 찬란한 광채가 조금은 수그러든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아찔한 장면도 있었다. 아마 제시부의 두 주제를 연결하는 경과부에서였던 것 같은데, 조성진이 순간적으로 박자를 조금 당겨 쳤고 그로 인해 오케스트라 반주와 약간 어긋났다. 다행히 지휘자가 노련하게 박자를 조절해주었고 조성진도 이내 제 페이스를 되찾아 더 이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위험한 고비 너머의 시간들은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조성진의 연주는 2악장을 중심으로 서정적 장면들에서 특히 돋보였는데, 평소에 비해 명징함은 덜한 대신 한결 차분하고 유연한 타건으로 쇼팽 음악 고유의 내면성에 한층 깊이 공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3악장에서는 특유의 생동감이 되살아난 데다 다분히 즉흥성을 지향한 듯 참신한 표현들까지 곁들여져 더욱 풍부한 감흥을 자아냈다.

이날 조성진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충분히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또 한 번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뜻 깊은 시간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앙코르로 들려준 바흐의 ‘사라방드’는 유독 진솔하고 겸허하게 다가왔다.

한편 이날 공연에서는 2부에서 연주된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도 상당히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프랑스 중견 지휘자 얀 파스칼 토틀리에의 지시는 매우 명확하고 알기 쉬웠는데, 덕분에 서울시향은 지난주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지휘 때보다 안정되고 균형 잡힌 앙상블을 들려주었다.

1악장 초입의 금관 앙상블은 짜임새가 다소 느슨하게 들렸다. 하지만 연주가 진행될수록 그런 적당히 이완된 모습이 지휘자의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틀리에는 감정이나 감흥보다는 리듬과 밸런스, 조형에 주안점을 두고 연주를 이끌어가는 듯했다. 그 결과는 작곡가가 작품과 관련해서 언급한 ‘운명의 마수’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 이례적으로 산뜻하고 쾌적한 순음악적 연주로 나타났다.

특히 4악장은 그야말로 축전적인 즐거움으로 시종했는데, 심지어 중간에 등장하는 ‘운명의 팡파르’마저 별로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을 정도였다. 프로그램북에 실린 지휘자 인터뷰와 일맥상통한 해석이었다고 할까. 다만 정서적 표정이 배제된 2악장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아무리 ‘텍스트 자체로 말하게 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더라도 최소한의 공감마저 결여한다면 재고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그래도 토틀리에는 대체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극적 고조부에서 보여준 호방한 제스처도, 주요선율을 큰소리로 따라 부른 허밍도 흥미로웠다. 바라건대 다음 번에는 자신의 장기인 프랑스 음악을 들고 와주기를.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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