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선배를 만나 함께 술을 마시자고 제안할 때 “오랜만에 한잔할까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잔’을 붙여 써야 할까? 아니면 띄어 써야 할까? ‘한’은 수량이 하나임을 나타내는 관형사이고 ‘잔’은 명사이기 때문에 ‘한 잔’으로 띄어 쓰는 것이 맞지만 이 경우에는 ‘한잔하다’가 ‘간단하게 한 차례 차나 술 따위를 마시다’는 의미의 동사이기 때문에 모든 음절을 붙여 써야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선배가 후배에게 “그럼 정말로 딱 한 잔만 하는 거다”라고 말할 때 ‘한 잔’을 붙여 써야 할까? 아니면 띄어 써야 할까. 이 경우에는 ‘한’이 수량이 하나임을 나타내는 관형사 본래의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관형사 ‘한’과 명사 ‘잔’을 띄어 쓰는 것이 맞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같은 음절이라도 의미에 따라 띄어쓰기가 달라지는 경우가 꽤 많이 있다. “오래 못 봤는데 언제 한번 봐야지?”라고 말할 때 ‘한번’은 ‘어떤 일을 시험 삼아 시도함을 나타내는 말’을 의미하는 부사이기 때문에 붙여 쓰지만 “그런데 정말 한 번만 보고 말 건 아니지?”라고 말할 때 ‘한’은 수량이 하나임을 나타내는 관형사 본래의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관형사 ‘한’과 의존명사 ‘번’을 띄어 쓰는 것이 맞다. 또한 “아기를 잘 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라고 말할 때 ‘큰소리’는 ‘남 앞에서 잘난 체하며 뱃심 좋게 장담하거나 과장하여 하는 말’을 뜻하는 한 단어이기 때문에 붙여 쓰지만 “괜히 큰 소리 내 자는 아기 깨우지나 마라”라고 말할 때 ‘큰 소리’는 소리가 강하다는 의미의 형용사 ‘크다’의 관형사형 ‘큰’과 명사 ‘소리’를 띄어 써야 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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