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의원(새누리당)이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세월호 관련 기사를 빼달라고 요청하는 녹음이 지난달 말 공개되면서, 새삼 우리나라 공영방송이 언론의 본령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버렸나 많은 이들이 실감하게 됐다. 이에 대해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우리나라 언론이 통제 가능한가”라고 반문하며 홍보수석이 KBS에 전화를 건 것이 ‘통상적 업무협조’라는 견해를 밝혔다. 과연 KBS는 최근 이 사건 보도를 외면해 온 자사의 보도 태도를 비판한 기자를 갑자기 제주도로 발령하는 등 ‘통상적 업무협조’관계를 여전히 긴밀히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영방송의 보도 독립성이 위태로워진 건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8년 YTN 기자들의 해고 사태가 결정적 계기였다는 게 언론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시 정권의 낙하산 사장인사에 반대하던 YTN 기자 6명이 해고됐다. 기자협회에 따르면 이후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해고돼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언론인이 14명으로 늘어났다. 다큐멘터리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통해 방송이 어떻게 정권에 ‘협조’하는 기관이 돼버렸는지 조명한 김진혁(42)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만나 방송기자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김 교수 역시 2013년까지 EBS PD로 일하며 보도통제의 압박을 온몸으로 느낀 언론인이다.
_지난 7년간 방송이 어떻게 변한 건가.
“몇 가지 중요한 변화의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가장 본질에서 바뀐 건 첫째로 어떤 이슈를 다룰 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식으로 다룰까 하는 문제를 언론사 자체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정부에서 이렇게 다뤄줬으면 하는 시각을 먼저 고려해 결정하는 식으로 바뀌었다는 거다.”
_자기검열인가.
“처음에는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그랬던 것처럼 먼저 연락이 오는 거로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기간이 흐른 후, 전화를 받고 이를 수용하던 이들이 경영진과 간부로 승진하게 되면서부터는 굳이 먼저 전화하지 않아도 방송사에서 알아서 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그 관행이 굳어져, 여소야대 국회가 들어선 현 상황에서도 정권을 의식해 보도 아이템을 정하는 태도에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한다. 편집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은 “이제 그 정도 기사는 방송에 내보내도 돼”라는 명시적 지시가 없으므로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자기검열이 내재화됐다는 자괴감을 느끼는 방송기자들이 적지 않다. 또 다른 측면은 정권의 간섭에 저항하던 언론인들이 해직된 후 방송사 내부에 냉소주의가 팽배해졌다는 점이다. 한 쪽은 별 문제의식 없이 정권의 시각을 반영하는 보도를 내보내고 다른 쪽에선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것, 그 두 가지가 현재 공영 방송 보도국의 모습이 된 것 같다.”
_그렇게 바뀐 지 얼마나 된 건가.
“2012년 MBC 노조의 170일 파업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170일 파업을 접을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김재철 당시 MBC 사장 퇴진을 약속했고 이상돈 국민의당 최고위원(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정치쇄신특위 위원)이 이를 보장했다. 그래서 설사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방송의 독립성이 회복될 것이란 기대를 하지 않았나 싶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 통제는 현 정권보다 더 심했다. 정권이 바뀌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정권교체가 안 되면서 확실히 기세가 꺾였다. 언론 노조의 마지막 저항 수단인 파업을 철회했으니 더는 달리 방법도 없었다. 보도 통제에 앞장서 저항하던 기자들은 복직 소송을 위해 법원에 다니느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해야 했다.”
_EBS PD로서 본인도 보도통제 압력을 받았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보도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나.
“그게 참 애매하다. 구체적으로 누가 하지 말라고 했다는 걸 알 수 없다. 대신 다른 이유를 대면서 자꾸 방송 제작을 미루게 한다. 그래도 제작을 강행하면 간부진에서 중단시킨다. 내가 만들던 반민특위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을 누가 중단시켰는지, 이유는 뭔지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나에게 내려온 지시는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지식채널 e’ 같은 짧은 프로그램 제작을 잘하니까 이 일을 접고 가서 도와줘라’는 것이었다. 그 일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했다. 반민특위 다큐 만들 당시는 지식채널 e를 그만둔 지가 꽤 된 상태였다. 이런 식으로 데스크의 인사나 업무 배정권한도 보도통제의 주요 수단이 된다.”
_요약하자면, MBC 노조파업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난 상태에서 점차 기자들은 정권에 민감한 사안에 대해 보도하기 힘들어지고, 이에 저항하면 한직으로 돌고, 이를 지켜본 동료 후배들은 보도통제에 순치되고, 그런 일이 지속되면서 공영방송이 황폐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 MBC 노조가 싸우는 데 있어 가장 큰 맹점이 징계보다 인사발령이다. MBC 사측은 ‘PD수첩’의 이우환 PD를 드라마 세트장으로 발령 낸 것부터 시작해서 보복 인사를 이어갔다. 그렇게 하면 노조가 정식으로 문제제기하기 곤란해진다. MBC 노조를 초토화한 또 다른 원인은 대체인력이다. 사측이 대체인력을 선발하며 1년 후에 정규직으로 계약해 주겠다 한다면, 이건 정말 강력한 통제수단이다.”
_‘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면서 최승호 PD가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해직 언론인 등 현재의 언론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것 같지 않다, 만일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그들이 이전 정부에는 순종하다가 왜 우리에게는 저항하느냐고 따진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라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친여 인사들의 시각도 이 점에서 흡사하다. 역시 다큐를 보면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이 사옥에 못 들어가게 저지하는 노조원들을 향해 “정연주가 KBS 사장될 때는 가만있다가, 왜 난 못 들어가게 하나, 너희들 편파적이다”고 주장하는 대목이 있다.
“오늘날 공영방송 독립성의 위기의 출발점은 낙하산 사장에서 시작한다. 이명박 정권과 현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보다 적극적이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문제의 시작은 노무현 정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직후 대선 후보 시절 언론특보를 맡았던 서동구씨를 KBS 사장으로 임명했으나, 결국 반대 여론에 밀려 1주일 만에 사퇴했다. 이를 계기로 공영방송에 낙하산 사장은 안 된다는 전통이 세워질 수 있었으나,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되자 언론특보였던 구본홍씨를 YTN 사장에 앉힌다.”
_20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야당 쪽에서 공정방송을 확립하기 위한 여러 법안을 냈는데 내용을 보면 사장을 임명하는 이사나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야당 추천 인사의 숫자를 늘리는 게 주된 대책인 거 같다. 낙하산 사장이 문제의 근원이라면 이 역시 별 효과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 이사진을 최소한 동수로 하면 지금보다는 분명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사장을 정권의 입김이 최소화하고 공정하게 뽑아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_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그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사장 임명은 ‘이사진 3분의 2 찬성’같이 특별다수제를 적용해 선발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여야 모두 인정하는 인물만이 사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공영방송 ZDF가 이를 적용하고 있다. ZDF 사장은 77명으로 구성된 ‘텔레비전 위원회’가 무기명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데 이때 5분의 3인 47명의 지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연합뉴스가 사장 선발 시 특별다수제를 적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장 선임 투표 참여자 숫자를 대폭 늘리는 것도 정파성을 희석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 듯하다.”
_‘7년- 그들이 없는 언론’ 개봉은 어떻게 돼가나.
“늦어도 11월 전에 개봉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5월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편집본이 너무 무거워 좀 더 힘을 빼고 희망적 분위기를 늘려 새로운 편집본을 만들고 있다. 개봉이 실현되기까지 이중고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라 흥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언론인이 아닌 일반인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_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새롭게 편집하고 있는 버전은 해직언론인을 버티게 하는 동력이라 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려고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해직언론인들의 싸움은 이미 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국 내부에서 여전히 미래를 기다리고 이를 준비하는 작은 몸짓이 이어지고 있으며, 대안언론 같은 작은 변화의 불씨도 일어나고 있다. 2008년 이후 입사한 젊은 기자 PD들이 해직된 선배 언론인과 관련된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금 침묵하고 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여전히 싸우고 있는 거다. 그런 움직임들이 모여 한 걸음 한 걸음 방송의 독립성 공정방송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예전엔 나도 이게 수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적으로 힘이 있다. 그런 것들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물밑에서 많은 힘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정영오 여론독자부장 young5@hankookilbo.com
정리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김진혁 교수는
-2002~2013 한국교육방송공사(EBS) PD
‘지식채널e’ ‘원더풀 사이언스’ ‘미래의 조건’ 등 연출
-2006년 한국 PD대상 실험 정신상, 2006년 여성가족부 주최 제8회 남녀평등상 방송부문 최우수상
-2007년 방송위원회 대상 지상파 TV 부문 우수상 등 수상
-2013년~지금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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