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충격에서 휘청거리고 있을 때 경제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은 최근의 세계화가 정치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세계화에 대한 대중의 반발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두 가지 성격이 겹치기도 한다. 대중은 지역적 정체성과 국가적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민주주의적 통제와 책임이 더 커져야 한다고 요구하며, 중도파 정당을 거부하고 엘리트와 전문가들을 불신한다.
예상 가능한 반발이었다. 나를 비롯해 몇몇 경제학자들은 세계화를 과도하게 밀어붙였을 때 생길 수 있는 결과에 대해 경고했다. 국경을 넘어 세계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했던 무역과 금융의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는 국가 내부의 집단들을 분열시켰다. 더욱 놀라운 점은 정치적 반발이 눈에 띄게 우익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나 스페인처럼 좌파가 우세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유럽에선 이민을 배척하는 국수주의적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에선 우익 선동가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의 실세가 됐다.
세계화는 세계 시장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자원을 갖고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인종이나 민족, 종교에 기반한 정체성 차이와는 달리 수입과 계층의 차이는 전통적으로 좌파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좌파는 세계화라는 중대한 정치적 도전을 왜 넘어서지 못한 걸까.
이민에 대한 반감이 너무 커져서 세계화가 가져온 다른 ‘충격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극우 정치인들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정체성 사이의 간극이 깊어지고 있다는 점을 악용한다. 그러니 우파 정치인들이 반무슬림 메시지와 함께 국수주의적 주장을 펼치는 게 전혀 놀랍지 않다.
남미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 나라들이 경험한 세계화는 대부분 이민자들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오는 충격이 아니라 무역과 해외투자가 가져온 충격이었다. 유럽과 달리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가 많지 않았으며 정치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남미에서 세계화에 대한 포퓰리스트들의 반발은 좌익 성향이 강했다.
유럽 내 우경화 현상에서 예외 국가인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리스에선 유럽연합(EU)과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요구한 긴축재정 정책을 놓고 정치적으로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스페인에 최근 유입된 이민자들은 대부분 문화적으로 유사한 남미 사람들이었다. 극우파들이 뿌릴 내릴 토양이 두 나라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미와 유럽 남부에서 좌파의 약점이 더 크게 드러났다. 세계화와 자본주의를 재편할 뚜렷한 계획이 없다는 점 말이다.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에서 브라질의 노동자당(PT)까지 좌파는 경제적으로 건전하고 정치적으로 대중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여기에는 좌파 경제학자들과 테크노크라트(전문지식을 가진 기술관료)들의 책임이 크다. 그런 계획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대신 그들은 너무 쉽게 시장근본주의를 받아들였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이 중대한 시점에 초세계화 운동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EU,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IMF가 정책의 표준으로 내세운 자유로운 자본 이동성은 세계 경제에서 최근 수십 년간 내려진 결정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에 이런 시도를 전면에 내세운 건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자크 들로르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위원장 같은 프랑스 테크노크라트들과 프랑스 사회주의당과 밀접한 사이였던 앙리 샤브란스키(당시 OECD 프랑스 대표부 소속)였다. 유사하게 미국에서는 금융 규제 완화를 이끌었던 전 미국 재무장관 로렌스 서머스처럼 민주당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테크노크라트들이었다.
프랑스의 사회주의파 테크노크라트들은 미테랑 전 대통령이 1980년대 초 케인스 학설을 끌어들여 했던 실험의 실패를 통해 금융 세계화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고 결론을 내린 듯하다. 좌파가 점점 똑똑해지고 있고 ‘대안은 없다’고 밀어붙이는 이들을 더 이상 믿을 이유가 없어지고 있다는 점은 좋은 소식이다. 좌파 정치인들이 경제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이유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몇 가지 예가 있다. 아나트 아드마티 스탠퍼드대 교수와 사이먼 존슨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는 급진적인 은행 개혁을 지지했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와 토니 앳킨슨 옥스퍼드대 교수는 불평등에 대처할 수 있는 국가적 수준의 다양한 정책들을 제안했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서식스대 경제학 교수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포괄적인 혁신을 촉진시키기 위해 공공분야를 어떻게 알맞게 배치해야 하는지 통찰력 있는 글을 썼다. 세계적 개혁을 제안하고 사회기반시설과 녹색경제에 장기적 공공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좌파 성향의 경제 계획을 만들 만한 요소는 충분히 많다.
좌파는 ‘우리’와 ‘그들’ 사이에 다리를 놓으면서 둘 사이의 차이를 극복한다. 반면 우파는 그런 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 이것이 우파와 좌파의 결정적인 차이다. 케인스 학설, 사회적 민주주의, 복지국가 등 좌파 경제학자가 초기에 일으켰던 개혁의 물결이 자본주의를 구해냈고 그 결과 그런 개혁은 필요 없게 돼버렸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런 식의 과정이 다시 없다면 세계는 분열과 갈등에 앞장서온 포퓰리스트들과 극우파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게 될 것이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 교수ㆍ경제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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