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급 승진대상자에 논술 시험
16~17일 이틀간 1대1 면접도 진행
“충성도 확인용이냐” 비판 나와
윤장현 광주시장이 최근 하반기 정기 인사를 앞두고 4급(서기관) 공무원 승진 대상자들에게 사전 예고도 없이 ‘공직자 경험기술서’작성을 요구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면접까지 실시했다. 그런데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공무원들 사이에서 “시장에 대한 충성도를 확인하기 위한 줄 세우기식 인사평가”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윤 시장은 지난 15일 오후 4급 승진을 앞둔 5급 공무원 44명에게 “당부 드릴 말씀이 있다”며 시청 대회의실로 모일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집합’ 소식에 어리둥절해 하던 공무원들 앞에 윤 시장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대신 자치행정국장과 행정지원과장이 대회의실에 들어와 “지금부터 경험기술서를 작성하라”며 공무원 시험에 쓰이는 B4 용지 크기의 논술형 답안지와 연습지(A4 용지)를 나눠줬다.
윤 시장이 직접 출제한 문항은 ‘민선 6기 광주시정의 의로운 변화와 그에 따른 문제점 및 개선 대책을 쓰시오’와 ‘공직생활 동안 수행한 업무 중 가장 성과가 높았던 업무 또는 가장 기억나는 실패의 경험을 생각해 그 내용을 쓰시오’ 등 두 가지였다. 이에 공무원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마치 논술시험을 치르듯 2시간 동안 경험기술서를 써내려 갔다.
하지만 이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윤 시장은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승진대상자들을 세 개 조로 나눈 뒤 경험기술서 내용 등을 토대로 시장실에서 1명 당 7~8분씩 면접을 진행했다. 시는 “경험기술서 작성은 윤 시장이 인사 참고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어서 평가 배점은 없고, 면접도 강제성이 없었다”고 확대해석을 차단했다.
그러나 경험기술서 작성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은 대체적으로 곱지 않다. 한 직원은 “솔직히 민선 6기 들어 윤 시장이 강조하는 의로운 변화가 있기는 있었느냐”며 “그런데도 인사에 반영하지도 않는다면서 이런 문제를 낸 걸 보면 윤 시장이 자신에 대한 공무원들의 충성도를 확인해보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직원도 “솔직히 먹고 살기 위해 경험기술서를 썼지만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며 “다른 직원들도 윤 시장의 입맛에 맞게 내용을 작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은 그 동안 인사의 기준과 원칙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온 윤 시장의 인사 철학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게 이번 승진 인사를 놓고도 어김없이 시청 안팎에선 윤 시장의 비선 실세가 일부 승진 대상자를 사전에 면접했다는 설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더구나 승진대상자들은 인사를 앞두고 이미 자기기술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경험기술서 작성을 놓고 “인사고과에 따른 승진 관행 파괴”, “공정하고 합리적인 역량 평가”라는 긍정적인 평가는 묻히는 분위기다. 시 관계자는 “5급 공무원들은 시장에게 직접 결재보고를 하지 않는 탓에 시장으로서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해서 얼굴도 익힐 겸 경험기술서 작성과 면접을 실시한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는 게 윤 시장의 뜻”이라고 전했다. 윤 시장은 이번 면접 결과와 다면평가, 근무평정 등을 바탕으로 22일 4급 11자리의 승진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