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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푸른 밤 선상 한치낚시, 제주의 삶 그 달달한 맛을 낚다

입력
2016.07.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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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밤바다의 선상 한치낚시.
제주 밤바다의 선상 한치낚시.

살짝 나른함이 번지던 어느 오후에, 친한 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치 잡으러 배 나갈건데, 같이 가실래요?’ 이런 문자엔 거부할 어떤 방법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니, 있던 약속도 뒤로 미루고 일단 ‘그러자!’ 답을 보내야 한다.

바다엔 얼마 전부터 크고 작은 한치잡이 배들의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치 잡으러 슬슬 나서봐야겠구나’ 생각했지만, 일상은 산남과 산북을 오가는 이르고 늦은 출퇴근으로 몸과 마음의 여유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때에 받은 동생의 문자는, 때마침 조금 이른 퇴근날이라는 조건과 맞물려, 아주 반가운 제안이었다. 한치 배를 탄다는 것은 방파제나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는 것과는 달리, 조금 더 많은 조과를 올릴 수 있다는 점과 낚시하는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해질 무렵 제주 바다에서 바라본 제주시 전경.
해질 무렵 제주 바다에서 바라본 제주시 전경.

서쪽 바다 위로 붉게 노을이 질 무렵, 장비들을 옮겨 실은 동생의 배는 서서히 포구를 빠져나가 넓은 바다로 향했다. 먼바다 수평선에는 갈치낚시 배들이 줄을 잇듯 서 있고 가까이에는 한치잡이 배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어서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멀지 않은 바다 적당한 곳에 자리하여 닻을 내렸다. 바다 위에서의 한치잡이는 낚시라기보다는 조업에 가깝다. 둥근 폼에 말아둔 굵은 낚싯줄에는 한치잡이용 가짜 미끼가 대여섯 개 달려 있고, 끄트머리에 무거운 추를 달아 채비를 바닥 언저리까지 내려 고정해 둔 채 가끔씩 고패질만 해 주는 것이 선상 한치낚시의 일반적인 방법이다.

동생은 배를 고정하고 채비를 내린 뒤, 어둠이 좀 더 짙어지길 기다리며 바람과 물때와 조류의 방향을 가늠하였다. 그래야 채비의 흐름을 조율할 수 있고 한치가 잡힐 때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어둠은 좀 더 짙어졌고, 주변의 한치배들이 하나 둘 불빛을 밝히기 시작했다. 우리 배도 발전기 모터를 작동시키고 불빛을 비추었다. 그리고 내려둔 채비를 고패질하기 시작했다. 고패질 하다 보면, 또는 내려둔 채비를 살짝 들어보면 무언가가 살짝 당기거나 채비가 좀 무거운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이 한치가 미끼를 물었다는 신호이다. 채비를 양 팔 벌려 한자 한 자 끌어올린 다음 미끼들이 엉키지 않게 조심스레 들어올리면 어느 미끼에 실한 한치 한 마리가 매달려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물 위로 올라온 한치는 물대포를 찍 쏘면서 마지막 저항을 하지만, 이내 물칸 안으로 거두어지고 만다.

밤바다 위에서 둘러보는 바다와 육지의 전경도 새롭다. 웅장한 한라산 아래로 빽빽이 박힌 점 같은 불빛들이 해안가 길게 늘어선 섬의 정경, 눈이 시리도록 밝은 불빛들이 수면 위에서 파도와 함께 일렁이는 밤바다. 운신이 자유롭지 않은 작은 배 위에서 나는 지금 가만히 앉아 어둠 속에 고립되어 있지만, 두렵지 않은 이유가 지금의 풍경 때문이다. 밤바다 속을 비추는 불빛 아래에서는 먹이사슬의 당연한 풍경도 펼쳐진다. 불빛 아래로 수생 플랑크톤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빛을 향해 모여들면, 멜이나 각재기, 고등어 따위의 작은 물고기들이 떼지어 플랑크톤을 먹기 위해 몰려든다. 그리고, 몰려든 작은 물고기들을 먹기 위해, 지나가던 한치들이 모여들어 한바탕 먹이사냥을 벌인다. 우여곡절 끝에 한치의 빨판에 걸려든 작은 물고기들은 필사의 몸부림으로 몸의 비늘을 눈처럼 뿌리며 한치의 다리 사이로 빨려 들어간다. 잔인하지만 당연하고 흥미로운, 아담한 먹이사슬의 현장이 꾸려진 것이다.

이날 우리는 많이 잡지는 못했다. 남쪽에서 산을 타고 넘어온 거세고 무더운 바람에 잔물결이 심했고, 바다 속에 한치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가 있는 동생 입장에서야 많이 아쉬운 조과였겠지만, 나야 몇 마리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입장이기에 배를 탔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세시간이 조금 안 되는 낚시를 끝으로 포구에 들어와 정리를 하고 동생은 잡은 한치를 직접 손질까지 해 주었다. 네 마리를 받아 들고 나는 집으로 와서 때마침 와 계시는 장인 장모님께 회로 손질하여 내어드렸다. 방금 잡은 한치의 달달함과 신선함이야 말할 것 없었다.

제주에 살다 보면 이런저런 즐길 기회를 만나게 된다. 그냥 즐길 거리도 많지만, 평소에 조금만 준비해두고 연습해두면 좀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적당한 자전거와 안전장비를 갖추고 해안도로 주행에 조금 익숙해지면 언제든 자전거를 오랜 시간 즐길 수 있고, 생선회를 손질하는 방법을 조금 익혀둔다면 갑작스레 받아 든 횟감에 당황하지 않고 회로 손질하여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낚시도 그렇다. 굳이 좋은 장비를 준비할 것 없이 스스로 채비를 다루고 운용하는 방법만 조금 익힌다면, 어느 때라도 다른 이의 손을 빌리지 않고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사람 사는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알게 되고 배우는 것들이 생기게 되고, 어떤 기회에는 그런 경험들이 즐거움을 한층 높이는 방법이 된다. 그런 기회들이 좀 더 많은 곳이 여기, 제주이다.

전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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