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부부와 함께 ‘전원 二代’
전셋값 치솟자 의기투합
타운형 단지내 2층 주택 지어
아파트식 내부, 출입문은 따로
온가족 바비큐 파티 ‘행복만점’
전세금ㆍ저축 털어 아파트 탈출
층간 소음 문제로 스트레스
5년여 맞벌이 자금 쏟아부어
우체통 만들고 전원 가꾸기
버킷리스트 실천에 가슴 뿌듯
세대갈등이 뭐에요?
“할아버지 좀 더 세게 밀어주세요. 부릉부릉~ ”
지난 13일 오후 4시쯤 경기 용인시 처인구의 한 전원주택단지. 김명권(70)씨가 5살 손자 한겸이와 초록빛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당 옆 17㎡ 규모의 텃밭에서는 김씨의 아내 오순옥(64)씨가 지난 2월 태어난 손녀를 업고 며느리 김애희(34)씨와 찬거리를 고르느라 웃음꽃이 피었다.
“어머니 오늘 저녁에는 상추와 깻잎 등을 따서 쌈밥을 준비해볼까요?” 호박, 가지, 오이, 부추, 토마토 등 먹음직스런 채소를 앞에 두고 애희씨가 순옥씨를 살갑게 챙겼다.
공직에서 은퇴한 뒤 부산에 거주하던 김씨 부부와 용인에서 전세를 살던 아들 내외가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지난 2014년 8월쯤이다.
김씨의 아들 내외는 흥덕지구 내 전세 2억 원짜리 아파트(전용면적 84㎡)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2013년쯤부터 갑자기 주변 전세 값이 급상승하기 시작하더니 3억 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재계약을 1년여 앞두고 당장 1억 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던 아들 창규(42)씨와 며느리 애희씨가 김씨 부부에게 상의한 게 결정적 계기였던 것이다.
“어차피 고향인 경남 고성 시골에 단독주택을 지어 여생을 보낼까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며느리가 ‘손주들 재롱도 보시고 함께 사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해서 합치자 결심한 겁니다.”
아들 부부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 뒤부터는 김씨가 발벗고 나섰다. 전원주택 입지를 고르고 설계와 인허가를 처리하는 등 바쁜 아들을 대신해 ‘아마추어 건축가’로 변신했다. 성남시 판교에 있는 게임업체에 다니는 아들이 한 시간 이내에 출퇴근할 수 있고, 며느리가 쇼핑ㆍ문화 인프라를 누릴 수 있도록 도심에서도 그리 떨어지지 않은 ‘근교형’ 부지를 물색했다. 치안 등을 고려해‘나홀로 주택’보다는 전문 개발업체가 택지를 개발, 필지 나눠 분양하는 단지를 마음에 뒀다.
1,2개월 발 품을 팔아 현재의 타운형 단지 내 561㎡(170평) 터를 3.3㎡에 150만원씩, 모두 2억5,500만원에 매입했고 그 위에 4억여 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세련미 넘치는 건물 내외부의 기초설계도 김씨가 직접 했다. 적용된 건폐율(20%)에 맞춰 바닥면적을 잡은 뒤 1층(85㎡)과 2층(85㎡)을 단독세대로 분리하고 출입문도 따로 내 아들 내외의 프라이버시를 배려했다. 옥상에는 2층과 연결되는 다락방을 만들어 손주들에게 장난감 방을 선물했다.
집 내부 공간 배치 등도 세심하게 신경 썼다. 아파트와 비슷하게 구조를 배치해 편의성을 높이고 인테리어 자제도 친환경 소재를 위주로 썼다. 김씨는 “모두 합해 7억 원이 조금 넘게 들어간 자금은 퇴직금과 아들 내외 전세금, 부산의 집 매각대금 등으로 충당했다”며 “자식, 손주들 온기를 느끼며 편안하게 살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며느리 애희씨의 만족감도 높았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잠에서 깨요. 깨끗한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어 정말 좋아요.”
남편 출근 뒤 도맡았던 육아와 가사부담도 덜었다. 애희씨는 “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게 사실”이라며 “남편도 일찍 퇴근해 가족과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등 가정적이 됐다”고 말했다.
나만의 로망… 전원주택 꿈 이룬 40대 부부
전원주택으로 김씨 가족이 전세난 등을 털고 세대간 유대를 이었다면, 이웃인 김미숙(41ㆍ여ㆍ가명)씨 부부는 20년 뒤 이루고 싶었던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앞당겨 실천했다.
김씨 부부는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서 25층짜리 아파트 14층(전용면적 84㎡)에서 전세(2억2,000만원)를 살았다. 하지만 7,5살 아들 둘이 커가면서 층간 소음 문제가 부부를 괴롭혔다. 아래층에서 직접 찾아오거나 경비실에 연락해 주의를 주는 횟수가 날이 갈수록 많아졌던 것이었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게 잘못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줘야 하나 싶은 찰라, 남편(45)이 설득하더라고요. 이 참에 은퇴 뒤 예쁜 집을 지어 전원생활을 하고픈 로망을 실현해보기로 한 거죠.”
자금은 전세금과 2009년 결혼 뒤 5년여 맞벌이를 하면서 꼬박꼬박 부은 연금ㆍ저축 등을 정리하면 될 듯 했다. “4억 원 정도면 시도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남편과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고요.”
김씨 부부는 495㎡ 땅을 2억2,500만원에 구입, 지난해 10월 2층(1층 75.9㎡ㆍ2층 56.1㎡)짜리 아담한 전원주택을 마련했다. 용지비 외에 건축비와 설계비, 개발부담금, 인허가 비용 등이 3억여 원 더 들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세금 등이 추가돼 1억여 원을 은행권에서 빌려야 했지만 김씨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전원주택으로 옮긴 뒤 김씨 가족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반복된 도심의 일상에서 벗어나니 여유가 생겼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남편은 차고지 옆에 자그마한 기계ㆍ공구실을 차려 주말이면 집을 가꾸기 바쁘다고 했다. 김씨는 “정원을 가꾸고 새집, 우체통 등을 아이들과 만들며 주말을 보내는 남편을 보면 흐뭇하다”며 “올 여름에는 마당에 고무 튜브로 미니 수영장을 만들어볼까 해요”라며 들뜬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김씨 가족에게 불편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우유 하나를 사더라도 차를 끌고 가야 해요. 아이들도 어쩔 때는 친구들이 많이 없다고 투덜대기도 하죠.” 사교육에서 해방된 아이들이 도시아이들과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김씨는 지난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는 “아이들이 어리고 예쁜 시기, 온 가족이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시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며 “우리 부부가 버킷리스트를 실천했다는 자부심도 여전히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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