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문제의 불똥이 국회 입법조사처까지 튀었습니다. 정쟁(政爭)의 외곽에서, 말 그대로 입법을 위한 연구용역을 조용히 수행해 왔던 입법조사처가 왜 국가적 논란의 중심에 갑자기 섰을까요.
사건은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사드 배치 문제는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안인가’라는 주제로 입법조사처에 질의서를 보내면서 시작됐습니다. 입법조사처는 이에 대해 14일 김 의원실에 답변서를 보냈는데, 이게 참 애매했습니다. 요약과 목차를 포함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답변서에는 분명, “사드 배치 합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지위협정에 근거해 기관 약정으로 분류, 국회 동의 대상이 아니다”는 정부의 주장에 법률적 근거가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의 주장에 근거가 있다고 전제한 직후, “기관 간 약정 방식으로 체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동시에 ‘비엔나 협약’과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국가주권을 덜 침해하는 방향으로 조약을 해석 적용해야 한다’는 법리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받을 것을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결론지으면서 불거집니다. 정부와 야권의 주장을 병렬식으로 설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읽기에 따라서는 마지막 부분, 즉 국회동의가 필요하다는 취지에 방점에 찍힌 채 답변서가 작성됐다고 판단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국회 동의 필요성의 근거가 필요했던 김 의원실은 당연히 후자 쪽 독해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입장을 선명히 하기 위해 “입법조사처가 정부 측 견해에도 일견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봤다”는 부분은 대부분 생략했습니다. 국회 동의 문제를 두고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던 시기에 입법조사처의 답변서 일부 내용은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 왔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입법조사처는 14일 해명보도자료를 내고 “조사처는 국회 비준동의 필요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조사처는 중립성과 객관성을 업무원칙으로 국회의원 의정 활동에 필요한 조사·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며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는다”고 허겁지겁 반박했습니다. 입법조사처가 특정 사안에 대해 해명보도자료를 낸 전례가 드물었던 점을 고려하면, 조사처가 얼마나 난감한 상황에 처했는지를 미뤄 짐작이 가능할 겁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실 측은 “입법조사처의 답변서의 전체적 취지와 무게감을 봤을 때 국회 동의 쪽이 더 논리적이라는 취지로 충분히 해석돼 보도자료를 낸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해명보도자료까지 낸 것을 보면 새누리당의 압력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입법조사처의 곤욕은 15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질타에 나선 사람은 집권 여당의 원내수석부대표인 김도읍 의원이었습니다. 그는 임성호 입법조사처장을 불러낸 뒤 “입법조사처는 글자 그대로 입법을 위한 조사를 하는 기관”이라며 “이런 의뢰가 들어오면 ‘저희는 유권해석을 하는 곳이 아니므로 법제처에 문의해 달라’고만 하면 되는데 왜 정치적 논란을 일으키느냐”고 나무랐습니다.
난감한 표정의 임 처장은 “저희는 결론을 내리는 기관이 아니고, 유권해석을 하지 않는다”며 “의원들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정리하고 법 논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뿐이고, 이번 답변자료도 유권해석이 아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빌미가 됐다면 죄송하다”면서 “앞으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말은 된다”는 식의 입법조사처의 답변 방식은 오래된 습관입니다. 여야가 항상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 편에 유리하게 해석될 내용만 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도 어떻게 보면 버릇처럼 큰 고민 없이 입법조사처가 양 측 입장의 논리를 정리 해 보낸 것을, 정치적 의도에 따라 일부 확대 해석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의 책임을 한 쪽으로 몰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해석의 여지가 남을 만큼 허술한 보고서가 원인일지, 그 것을 이용한 의원이 문제일지. 적어도 둘 다 잘했다고 칭찬 받을 일은 없었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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