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인터넷에서 인기 많고 팔로우가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 중에 ‘pora_valit’ (이민_급함)이라는 인터넷 포럼이 있다. 이 커뮤니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에서 다른 나라로 이민 간 사람들과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모여 해외 생활, 다른 나라의 장단점, 이민 고려사항 등과 같은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안 돼 성격이 바뀌었다. 단순히 이민 관련 행정 정보나 해외 생활 설명을 넘어 이민 자체에 대한 찬반, 애국심에 대한 토론, 이민자의 정체성 등에 대한 논쟁터로 변해 버렸다.
이 온라인 커뮤니티는 재미있는 사회 현상과 새로운 유행어를 러시아 말에 소개하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똥시아’(똥 +러시아)다. 러시아가 최악의 나라이고 법적이든 불법이든 당장 이민 가야 한다는 의미다. 이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읽어 보면 다른 나라, 주로 서유럽 국가와 미국을 지나치게 찬양하고 러시아가 그보다 모든 면에서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러시아 뉴스를 통해 안 좋은 소식이 들리게 되면 ‘그래,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이게 러시아 수준이야’와 같은 댓글이 올라온다.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바로 ‘똥시아’라는 말부터 올라온다.
처음 ‘헬조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이 러시아 온라인 커뮤니티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표준어도 아니고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유행어라는 점은 같지만, 러시아와 한국이 너무나 다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안 좋은 이름을 같이 붙인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떻게 보면 애국심의 정반대 개념 같기도 하다. 객관적인 사실을 무시하면서 자기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확실히 모든 면에서 뒤처진다는 생각이 호응을 얻는 건 그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헬조선’이나 ‘똥시아’와 같은 용어들이 왜 생긴 걸까.
이 세상에 완벽한 국가가 없다. 완벽한 국가는 유토피아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잘 사는 나라’ ‘선진국’의 기준은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객관적인 수치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체험적으로 비교하면서 평가하는 것이다. 어떤 나라 사람들이 우리보다 돈도 더 많이 벌고, 집도 크고 음식도 다양하고, 의료 시설도 더 좋고… 등과 같이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남의 떡은 항상 커 보인다.
그 나라에도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현지인들이 괴로워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무시하는 경향이 크다. 내 경험으로 미국에서 관광 아닌 장기 거주 경험이 있는 한국사람들과 미국을 아예 한 번도 안 가 봤거나, 단기 여행만 가 본 한국 사람들의 미국 평가가 아주 많이 다르다. 한국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미국, 경제니 사회니 항상 우수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미국, 무조건 본받아야 한다는 미국서 오래 살아 본 사람들의 평가는 너무 낮다. 우리가 멀리에서 보는 미국 사회의 이미지와 현실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시아를 ‘똥시아’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단지 TV에 나오는 화면보다 내가 지금 사는 이곳이 나에게 너무 많이 괴롭고 힘들고 재미없으니 욕부터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애국자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은 물론,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증오하는 한국을 떠나서 다른 나라에 잘 살 수 있을까. 자기 나라를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국가 개선 과정에서 매우 필요한 것이지만 증오의 결과는 파괴뿐이다.
조국을 비하하는 것은 결국 그 나라 국민으로서 본인을 비하하는 것이다. 그 어떤 나라든 안 좋은 면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이야기다. 결국 헬조선에 사는 사람들은 헬조선인들이고, 한국인들은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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