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브렉시트)가 지난달 국민투표로 결정되고 곧바로 13일 브렉시트를 실현시킬 테리사 메이 총리 내각이 구성됨에 따라 ‘영국 없는 EU, EU 없는 영국’은 먼 훗날이 아닌 코 앞에 닥친 현실이 됐다. 이에 국민투표 직전까지 브렉시트 이후 닥칠 상황에 대한 짐작조차 하지 않던 산업계는 각종 법규와 규제, 특허관련 기준들이 어떻게 달라질지 부랴부랴 계산기를 두드리기에 바쁘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1993년 EU출범 이후 지금까지 동일한 시장규칙에 따라 움직였던 영국과 EU회원국 기업들이 브렉시트 이후 달라지는 환경으로 인해 낭패를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항공기제작, 원자력발전 등 산업 전반 혼선
지난 달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 참여한 에릭 슈미트 알파벳(구글의 모기업) 회장은 이 같은 유럽 산업계 전반의 고충을 짐작케하는 발언을 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슈미트 회장은 “브렉시트가 이뤄져도 영국에 대한 투자를 계속할 것이며 일자리를 줄이지 않을 것이다”면서도 “다만 지금까지 구글이 유럽 전역에서 활용할 통합적인 플랫폼 구축을 위해 기울여온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기술분야의 규제에 있어 브렉시트 이후 EU와 영국이 차이를 두면 구글과 같은 거대한 기업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걱정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와 다름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브렉시트 이후 산업계가 맞이할 불확실성은 정보통신업계, 항공업계, 제약업계까지 두루 먹구름처럼 뒤덮혀 있다”라고 지적했다.
당장 항공업계는 혼란의 중심에 놓일 처지이다. 1990년대 이래 EU는 회원국들 공항을 이용하는 유럽은 물론 미국과 주요국 민간 항공기들이 별다른 이착륙 사전허가 절차를 밟지 않도록 해왔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에는 이러한 편리함이 사라질 전망이다. 이로 인해 런던에 본사를 둔 이지젯, IAG(영국항공의 모기업) 등 많은 항공사들은 일제히 EU회원국으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하늘을 공유하는 유럽’을 지향해 비용을 절감하고 규제를 줄이려던 EU의 항공정책은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해졌다.
항공기 관련 부품제조사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에어버스 기종의 날개를 제작하는 영국의 한 기업 관계자는 “어느 누구도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의 기업지원정책이 영국기업들에 이전과 동일하게 적용되리라 장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에너지 업계도 브렉시트가 가져올 혼란에 넋을 놓고 있다. 지난 4일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2014년 유럽위원회의 동의와 영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약속 아래 영국 힝클리포인트(Hinkley point)지역에 대규모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애써 강조해야 했다.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당장 영국 정부가 2년 전 약속했던 지원금을 끊을 수 있고, 새로 짓는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유럽 수출시장에 대한 보장도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EDF의 프로젝트가 재검토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표준 단일화 깨지는 유럽, 불확실성의 바다
신약 특허확보에 사활을 거는 제약사들은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의 지적재산권 통합 노력이 퇴색되고 관련 특허법원의 신설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한숨을 토해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제약 기업들은 2018년까지 영국내에 제약과 화학특허를 전담하는 국제지재권 재판소가 설립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단일화된 표준에 따라 특허를 허용하는 유럽의 지재권 통합이 진행되면 유럽내에서 비용을 크게 절감하며 영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했었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이러한 전망도 산산조각나는 분위기이다.
‘하나의 유럽’을 지향해온 유럽은 그동안 많은 분야에서 규제의 단일화와 거래절차의 단순화를 지향해왔기 때문에 비용절감효과가 컸다. 각국 기업들이 동일한 표준을 지키면서 유휴생산라인을 줄일 수 있고, 따라서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최종구입비용도 떨어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이 모든 장점을 불확실성과 맞바꾸고 있는 형국이다. 독일의 한 화학기업 관계자는 “유럽 국가들과 공통된 표준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영국 기업과의 공조에 투자자들이 더 이상 믿음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렉시트로 인해 증대하는 각종 불확실성은 일반 소비자들의 주머니도 크게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모바일통신 업계는 EU의 테두리 안에서 제공했던 여러 혜택들을 거둬들여야 할 처지이다. 영국 언론들은 “영국 모바일 통신업체들은 그동안 EU회원국을 여행하는 자국민의 로밍통화 비용을 부과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이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대형 식료품 회사들도 영국에서의 고용비용, 공장운영비용 등이 브렉시트 불확실성으로 치솟아 투자환경이 나빠질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의 유명 식품업체 마르스의 마티아스 베링거 마르스 부회장은 “EU에서 빠져나오는 영국기업들이 이전에 따르던 EU의 규제를 그대로 베껴 새로운 룰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시장의 혼란을 우려했다.
산업계 전반이 브렉시트로 우왕좌왕하면서 가장 먼저 영국 기업들의 경기를 바라보는 비관적인 시각이 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영국에 기반을 둔 기업 1,0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향후 1년 동안 경제가 현재보다 나빠질 것이라 보는 기업의 비중이 브렉시트 결정 이전 25%에서 국민투표 후 49%로 2배가량 치솟았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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