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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좋은 것만 주지 않아도 괜찮아

입력
2016.07.1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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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요.” 광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문구다. 엄마라면 누구나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고, 좋은 것들을 누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나 역시 아이들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해주고 싶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리 행복한 기억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그런 마음이 더 강한지도 모른다.

얼마 전, 친구의 소개로 한국을 잠시 방문한 외국 경제지 기자를 만난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주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정부 관료들을 만났다고 한다. 내가 한국의 불평등, 빈약한 복지제도와 사회안전망, 주거와 교육 문제, 공평한 증세방안에 대하여 서툰 영어로 이야기했더니 매우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도 종종 논의의 자리를 만들어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 기자가 만난 사람 중에서는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고 잘 나가는 사람은 많았겠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겠구나. 그래서 그만큼 나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느껴지겠구나. 왜 나는 이런 문제들을 잘 알고 있고, 이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민단체에서 일하게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어린 시절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 같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외국으로 유학 가시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외할머니댁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서울 중심부의 달동네였다. 외할머니집 지하실에는 미싱공장이 있었고, 밤에는 술에 취해서 싸우는 동네 주민들의 소리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고, 같은 반 친구들은 결손가정이 많았다. 나중에 전학하면서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에 적응하는 과정도 힘겨웠다. 나는 어린 시절에 빈곤이 가져오는 가정의 해체와 아이들의 방황,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 소외감 등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고, 많은 문제가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해가야 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그때의 경험들이 나에게 조금 다른 선택을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변호사가 되었지만, 로펌을 그만두고 시민단체에서 일하게 된 것 말이다.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어린 시절이 나에게 새로운 길을 찾게 한 것이다.

물론 행복한 어린 시절이 주는 힘도 분명히 있다.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내고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은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성격이 밝고 구김살이 없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보니, 행복하게 자라난 친구들은 그런 행복을 누리기 어려운 많은 사람에 대한 이해나 공감이 부족한 경우도 있고, 작은 좌절에 더 힘겨워하는 경우도 있었다. 좋은 것만을 누린 어린 시절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것처럼, 행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도 장점도 단점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좋은 것만 누리게 해주고 싶다는 나의 마음을 좀 내려놓기로 했다. 아이들을 사랑해주고 즐겁게 놀아주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일하는 엄마로서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다. 때론 피곤하고 힘들어서 방임하는 시간도 있다. 아이들은 종종 엄마의 부재로 인한 아쉬움도 느낄 것이다. 행복하기만 한 어린 시절이 꼭 좋은 것은 아니야. 인생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내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행복한 추억은 힘이 되어주고, 아쉬운 기억들은 성장의 계기가 되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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