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섬겨야 할 고위공무원이 국민을 개, 돼지로 보는 참담한 세상에서 공무원을 늘려야 한다고 하면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공무원이 대세인 듯하다.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취업준비생 54만명 중 57%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거나 준비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교원을 준비하는 비율을 더하면 20대 청년의 무려 72%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최고 학부에 재학 중인 학생조차 9급 시험을 준비하는 세상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현실과 달리 공무원 열풍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청년들이 기업에 취업해 혁신역량을 발휘해야 하는데 모두 공무원을 하겠다니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기업의 혁신이 있어야 경제도 성장하고, 국가경쟁력도 높아질 터인데, 청년들이 모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철밥통에, 관료주의에 찌들고, 복지부동에, 혁신 대신 구태를 신조로 삼고, 그것도 모자라 최고위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이 도처에 득실거리고 있는 현실에서 공무원을 늘리자는 주장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늘리기는커녕 줄이는 게 정답일 수 있다. 하긴 오죽하면 재벌기업 출신이 인사혁신처장이 되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비난은 “정부가 문제”라며 시장주의를 옹호하려는 집단의 그릇된 선전이다. 생각해 보라. 왜 기업만이 혁신의 주체가 되어야 하나. 혁신이 기업의 것이라는 생각은 신화이다. 오히려 혁신의 주체는 공무원이고, 정부가 되어야 한다. 유능하고 혁신적인 공무원들이 없었다면 한국과 일본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기업혁신의 가장 큰 수혜자는 기업의 소유주이지 국민이 아니다. 삼성과 현대에게 좋은 일이 반드시 국민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다. 반면 공무원이 주체가 되는 국가혁신의 가장 큰 수혜자는 국민이다. 문제는 복지부동하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일부 공무원들이지, 공익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 그 자체가 아니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사회로 알려진 북유럽국가들의 공무원 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의 전체 취업자 중 공공부문 취업비율은 7.2%에 불과하지만,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무려 35%에 이르고 있다. 취업자 10명 중 3, 4명이 공무원이다. 공무원이 많다고 혁신역량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들만이 아니다. OECD 국가들의 공공부문 취업 비중도 21.3%에 이르고 있다. 또한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정부부문의 확대가 민간부문의 발전을 저해한 것도 아니다. 폴 크루그먼의 지적처럼 시장에서 소비되는 돈은 출처를 묻지 않는다. 지출은 지출이고, 돈은 돈이다. 모두 동일한 효과가 있다.
더욱이 공공부문이 큰 사회가 불평등과 빈곤이 낮다는 사실은 가뜩이나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한국사회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만약 우리가 OECD 평균수준으로 공무원 비율을 늘린다면 지금 당장 200만명이 넘는 공무원을 신규채용해야 한다. 청년 취업준비생 54만명의 4배, 공무원 110만명의 2배에 이르는 규모이다. 물론 무작정 공무원을 늘릴 수는 없다. 국민을 개, 돼지로 아는 자들이 고위직에 오르는 공무원사회를 그대로 두고 공무원을 늘릴 수는 없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믿을 수 있는 공무원사회를 만드는 일과 공무원을 늘리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어떤 공무원을 늘릴지도 중요하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완장 찬 공무원이 아니라 국민의 일상생활을 현장에서 지원하는 민생 공무원을 늘려야 한다. 안전, 교육, 보건, 의료, 돌봄 등 복지에 종사하는 민생 공무원을 늘려 한다. 청년에게 그런 공무원이 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양극화와 불평등을 줄이고, 한국사회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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