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선 평화진영 위축 조심스러운 우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생전에 퇴위하겠다는 뜻을 주변에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실관련 소식의 공개 자체가 금기시되는데다 일왕의 생전 양위는 200년 만의 처음 있는 일이어서 일본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NHK는 13일 궁내청 관계자를 인용해 올해 만 82세인 일왕이 ‘살아있는 동안 왕위를 왕세자에게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일왕은 수년 내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며, 이런 생각을 내외에 밝히는 방향으로 의견 조율이 진행되고 있다고 NHK는 전했다. 일왕의 생각은 미치코(美智子) 왕비와 향후 왕위를 승계하게 될 장남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56)에게도 전달됐으며 조만간 공식 발표될 예정이라고 NHK가 소개했다.?궁내청 관계자는 “일왕 입장에선 직접적인 표현은 피했지만 자신의 마음이 묻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왕은 “헌법에 정해진 (국가의) ‘상징’으로서의 의무를 충분히 감당할 사람이 덴노(天皇·일왕) 자리에 있어야 한다”며 “연로한 본인이 공무를 대폭 줄이거나 대역을 세워가며 일왕 자리에 머무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키히토의 선친인 쇼와(昭和, 히로히토·裕仁)까지 124대 일왕 중 절반 가까이가 생전에 왕위를 물려줬지만 에도(江戶) 시대 후기의 고가쿠(光格, 1780∼1817년 재위)을 마지막으로 200여년 간 생전 양위는 없었다.
쇼와 일왕의 장남인 아키히토 일왕은 11세에 일본의 패전을 눈으로 지켜본 뒤 전후 부흥기에 청춘시절을 보냈다. 25세 때인 1959년 미치코 왕비와 결혼해 세 자녀를 낳았고, 1989년 쇼와 일왕이 사망한 뒤 즉위했다. 2003년 전립선암 수술, 작년 2월 협심증 증세에 따른 관상 동맹 우회 수술을 각각 받았지만 비교적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식활동이 크게 줄어 건강이 악화했다는 소식이 일부 매체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일본 사회는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우경화 행보 속에서 다소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과오를 수시로 언급하면서 평화진영에게는 ‘호헌’의 상징적 존재였던 아키히토 일왕이 물러난다면 참의원 선거로 개헌선을 확보한 우익의 평화헌법 폐기도 막기 어렵게 된다는 지적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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