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분쟁을 중재하는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이른바‘남해 구단선’과 남중국해 인공섬에 대해 내린 판결은 사전 예상을 뛰어넘었다. 중국이 군사기지로 조성 중인 인공섬의 법적 지위만 판단할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중국이 공산정권 수립 이후 수십년 동안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아온 구단선에 대해서도 판단했다. 중국이 ‘핵심이익’이라며 어떤 외부 판단이나 타협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해 온 구단선에까지 국제법적 판단이 내려짐으로써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국제질서에 따르느냐, 무력에 의한 일방적 국익 관철에 나설 것이냐의 기로에 섰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PCA의 판결은 남해 구단선에 의거한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과 인공섬의 법적 지위를 모두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나아가 중국이 필리핀의 전통 어장에서 조업을 방해하고 원유ㆍ가스전을 개발하는 것은 필리핀의 영토주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확인했다.
이번 판결은 중국과 필리핀이 다투고 있는 남중국해 내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샤군도)에 한정된 것이지만 중국과 베트남 간 파라셀군도(중국면 시샤군도) 등 다른 분쟁수역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주변 6개국과 분쟁을 겪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주장할 수 있는 영해는 크게 줄어든다.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인정받기 위해 암초를 메워 인공섬을 조성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핵심쟁점에 대한 국제법적 판단은 나왔지만 긴장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즉각 ‘판결수용 불가’를 밝히고 조금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미국도 중국의 불법행위에 “눈감지 않겠다”며 정면대응할 태세다. 중국이 인공섬 조성을 강행하고, 미국이 ‘항행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위협적 군사작전에 임할 경우 군사적 충돌로 번질 우려마저 있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이다. 외교부는 어제 “남중국해 분쟁이 평화적이고 창의적인 외교노력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지극히 원론적 논평을 냈다. 중국의 행위가 국제규범에 반한 것임이 분명해진 마당에도 이 정도에 머문 정부 태도에서 대중 외교의 고민이 엿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미중 양국의 갈등이 커져 우리에게 양자택일이 요구될 때까지 이런 어정쩡한 자세로 넘어갈 수는 없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원칙에 매달려야 한다. 국제규범은 존중해 마땅하고, 국익 가운데 안보이익이 최우선이라는 게 원칙의 핵심이다. 나라 전체가 가다듬어야 할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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