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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경제 심재걸] "중국(영토)은 조금도 작아질 수 없다!"
중국 정치인의 입에서 나올 법한 발언이지만 걸그룹 에프엑스의 중국인 멤버 빅토리아가 던진 메시지다. 최근 국제상설중재재판소가 중국·필리핀 간 벌어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한 항의 표시다.
해시태그 형태로 SNS에 퍼지고 있는 이 문구는 다른 K팝 아이돌 그룹의 중국인 멤버들도 같이 사용했다. 엑소의 레이, 슈퍼주니어M의 조미, 미쓰에이의 페이, 피에스타의 차오루 등이 일제히 분노를 표출했다.
이례적이다. 이처럼 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정치적인 문제에 너나할 것 없이 목소리를 낸 경우는 처음이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소신을 떳떳하게 밝히는 부분을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은 아니다. 다만 후폭풍에 대한 책임도 염두해야 된다. 아이돌의 한 마디는 팬덤을 조각낼 수도 있기 때문에 기획사에서 가장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영역이다. 특히 정치적인 사안은 더욱 각별한 주의를 요구한다. 특정 세력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얻기도 하지만 반대 세력으로부터 몇 배 이상의 반발을 사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풍경이 연출됐다. 기획사의 이미지 관리 능력 부족 혹은 SNS 시대에 통제력 마비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보다 최근 K팝 시장이 중국에 지나치게 기대는 정서가 반영된 행동으로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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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 사이에서 SNS로 퍼지고 있는 이미지. '중국은 조금도 작아질 수 없다'는 글이 덧붙여진 그림이다. 인기 아이돌 그룹 엑소의 레이, 에프엑스의 빅토리아, 슈퍼주니어M의 조미, 미쓰에이의 페이, 피에스타의 차오루 등도 나란히 자신의 계정에 이 그림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캡처
K팝 기획사들은 최근 1~2년간 마치 금광이라도 찾듯이 '차이나 머니'에 군침을 흘렸다.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FNC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들이 앞장 서 중국 대기업과 지분을 나누며 혈맹을 맺었다. 5~6년 전 경쟁적으로 일본에 기대던 모습에서 이제는 '중국'을 노래하는 시대가 됐다.
만약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해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서 반대의 판결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그러자 필리핀 국적의 아이돌 멤버가 현재 중국인 멤버들이 말하는 내용을 똑같이 뱉었다면 어땠을까.
가까운 예로 트와이스의 쯔위 사태가 연결된다. 지금처럼 발언이 문제된 것도 아니었다. 대만기 한 번 흔들었다고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2개월 전 일이었고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 상황을 모르고 했던 일이라는 논리는 통하지 않았다. 들끓은 중국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결국 쯔위는 죄인처럼 허리를 숙이며 사과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했어야 됐나'라는 지적이 생겼던 부분이다. 다만 K팝이 글로벌화 되면서 다른 국가들의 민감한 소재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동시에 작은 행동도 얼마든지 큰 논란거리로 번질 수 있다는 교훈을 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K팝 아이돌의 발언은 중국과 뜻을 달리해온 필리핀, 대만, 일본 등에서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K팝을 잘 모르던 사람들도 해당 아이돌 멤버의 SNS로 찾아가 쓴소리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쯔위의 사례처럼 긴장하며 수습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그 때보다 날아오는 화살이 적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여론이 지금보다 더 들끓는다면 중국의 역공을 감수하겠다는 곳이 생겨날 지는 물음표다. K팝 시장이 요즘 지나치게 중국만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심재걸 기자 shim@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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