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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잃은 뒤 가전제품도 삶도 해체해 보는데...

입력
2016.07.1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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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몰리션'은 큰 상실을 겪은 한 남자가 삶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메인타이틀픽쳐스 제공
영화 '데몰리션'은 큰 상실을 겪은 한 남자가 삶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메인타이틀픽쳐스 제공

심드렁한 대화들이 오간다. 회사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집안 잡일에 대해 작은 신경전을 벌인다. 특별할 것도, 정감도 없는 말들이 결국 마지막 인사가 된다. 함께 차를 탔던 아내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남자는 가벼운 상처만 입고 살아남았다. 예전보다 몇 배 더 무거워진 삶의 무게는 오롯이 남자의 몫이다. 인생은 찰나에 벌어진 교통사고 이전과 이후로 극명히 나뉜다. 영화 ‘데몰리션’은 한 순간에 극단을 삶을 살게 된 남자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의 사연에 초점을 맞춘다.

아내를 잃은 뒤 데이비스는 난처한 처지에 놓인다. 상실의 아픔 위에 죄책감이 얹히고 민망함이 더해져야 당연한데 그는 슬프거나 괴로운 감정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 사고 뒤 정상 출근했던 그는 이상한 행동 두 가지에 몰입한다. 주변에 있는 가전제품 등을 해체하는 동시에 자신의 돈을 먹은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에 신세 한탄이 담긴 항의 편지들을 보낸다. 주변 사람들의 외면 속에 데이비스가 의지할 곳이 더욱 좁아질 무렵 심야에 자판기 회사 직원에게서 전화가 온다. “편지보고 울었어요”라고. 데이비스는 펜팔하듯 편지를 보내고 자판기 회사 직원 캐런(나오미 와츠)과 인연을 맺게 된 뒤 새로운 삶의 영역에 들어선다.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를 잃은 남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데이비스는 아내가 살아있을 적 간과했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기계의 작동원리를 모르거나 기계의 내부 구성을 모르고 기계를 사용하듯 데이비스는 자신의 삶이 어떻게 이뤄지고 어떻게 영위되는지 몰랐다. 가전제품을 해체하며 그는 자신의 삶도 해체한 뒤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는 결국 장인과 아내의 도움으로 얻게 된 고급주택과 중역의 자리를 벗어 던진다. 제목이 파괴라는 의미의 ‘데몰리션’(원제 ‘Demolition’)인 이유다.

‘데몰리션’의 감독 장 마크 발레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영화팬들의 눈길을 잡았다.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다 에이즈에 감염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에 대처했던 한 남자의 분투를 그린 영화다. 이전 작품 ‘와일드’는 어머니를 잃은 뒤 몰려온 슬픔의 파도 때문에 삶이 망가진 한 여인이 트래킹에 나서며 재활하는 모습을 세묘한다. ‘데몰리션’은 두 작품과 연속선상에 있다. 삶의 소중한 것(건강, 어머니, 아내)을 잃어 표류하게 된 사람들이 힘겹게 자력갱생하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듯 전한다. 감정이입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주인공의 굴곡진 사연에 관객이 젖어 들게 한다.

배우의 호연도 인상적인 영화다. 질렌할은 덤덤한 표정만으로 슬픔을 극복해내는 사내의 치열한 모습을 보여준다. 격랑보다 잔잔한 파도에 가까운 연기인데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매슈 매코너헤이(‘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게 생애 첫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안겨주고, 리즈 위더스푼(‘와일드’)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했던 발레 감독과의 앙상블이 만든어낸 명연이다. 13일 개봉했다.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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