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머리랑 뒷머리는 짧게 잘라 주시고요. 옆 머리는 비대칭이어야 돼요. 아, 앞머리는 꼭 일자로 잘라 주세요.”
여느 동네 미용실 모습이 아니다. ‘헤어살롱’으로 변신한 전시공간 풍경이다. 코너아트스페이스(서울 강남구 신사동)는 김가람 작가의 헤어커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전시 ‘아젠다 헤어살롱’을 8월 6일까지 열고 있다. 머리를 자르는 동안 참여자는 자신이 선택한 주제에 대해 작가와 이야기 나눈다. 퍼포먼스를 위해 김가람 작가는 ‘헤어커트 전문가 과정’도 수료했다. 장소성과 시의성을 반영해 참여자에게 제시된 주제는 ▦압구정 재건축 ▦성형수술 관광 ▦미술계 위작 세 가지다.
반이정 미술평론가는 12일 오후 이우환 화백의 위작 사건을 주제로 김가람 작가의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이번 개인전의 첫 번째 참여자다. 그는 “대중적 관심이 높은 데다 미술의 원작성에 관련한 주제인 만큼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위작이라는 주제를 택한 까닭을 설명했다. 김가람 작가는 “참여자들은 대부분 자신과 친숙한 주제를 택하고, 자신의 경험과 연관 지어 말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위작 논란에 휩싸인 작품이 “정황상 위작 같다”는 반이정 평론가는 “(이우환 화백이)직접 감정서를 발행했던 것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추측했다.
작품의 원작성을 논하는 과정에서 대화는 자연스레 조영남 대작 사건으로 흘러갔다. 반이정 평론가는 “기회가 될 때마다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며 “부정적 어감의 ‘관행’과 ‘대작’이라는 용어 때문에 조영남이 필요 이상으로 궁지에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작’ 대신 ‘주문 제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미술계에는 주문 제작 관행이 분명히 있다. 조영남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전시 내내 세 가지 주제로만 대화하는 게 지루하지 않을까. 김가람 작가는 “참여자마다 하고 싶은 얘기, 대화 스타일이 달라 지겨울 틈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앞서 그는 지난 4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난민 수용 문제, 브뤼셀 테러, 아트 이슈 주제로 51명을 상대로 퍼포먼스를 진행했었다.
변수도 많았다. 휴대폰이 울려 퍼포먼스가 중단되고, 대화가 주제에서 한참 벗어나기도 했다. 통 유리로 된 전시 공간 안쪽을 웃으며 구경하는 사람들로 민망한 상황도 연출됐다. 반이정 평론가는 “관객의 관여도가 높아진 퍼포먼스 작품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동시대인에게 주는 감동의 밀도가 낮아진 기존의 예술을 대체하려는 노력”이라고 해석했다. 헤어커트는 무료로 진행되며 예약(theagendahairsalon@gmail.com)도 가능하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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