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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때론 나도 한옥이 밉다

입력
2016.07.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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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거리에서 식당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의 풍경이 익숙하다.

책이나 신문을 보다 먼산바라기도 하고, 이따금 지나가는 내게도 슬쩍 눈길을 주던 이들을 더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만나기 어렵다. 그 여파가 작지 않다. 출판사는 위기에 빠졌고, 언론사도 경영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권력을 비판해야 할 언론에 닥친 위기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살가운 인간관계도 점차 사라지는 중이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엔 스마트폰이 있다. 스마트폰 때문에 무너지는 동심은 우리 미래까지 흔들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도구적 관계로 본다. 이런 식이다. ‘자연이 무언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자연이 인간의 도구이기 때문이지.’ 나아가 스마트폰에서처럼 도구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매개한다. 스마트폰은 하이데거 철학이 의미 있음을 현실에서 확인해준다. 그런데 이 작은 도구로 사회가 이처럼 빠르게 변했다면, 수천년 살던 집이 다른 나라와 전혀 달랐다면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다를까.

서양과 중국의 집은 기본적으로 중정(中庭)을 중심으로 지어진 폐쇄적 건축이지만, 한옥은 생활공간인 마당을 건물 외부에 둔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건축이다. 추운 계절이 있는 지역에서 이처럼 개방적인 집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독특한 한옥이 요즘 많이 원망스럽다.

다른 나라에서는 집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관념이다. 유럽에서 전통건축은 비례와 기하학 그리고 여기에 활력을 주는 빛을 통해 완성된다. 건축에 이런 요소를 강조하게 된 배경에는 플라톤의 이데아가 있다. 중국 사람들 역시 그들의 철학을 그들이 사는 집에 투영했다. 그런데 한옥에서는 이런 관념적 요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한옥이 구들의 발전에 따라서 끊임없이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진화를 조장한 것은 현실적 필요지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하이데거에게 집을 짓는 행위는 단지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함께 살아감을 포함한다. 즉 그에게 건축은 건물과 생활을 포괄하는 주거(住居)에 닿아 있다. 하이데거가 살아 있어, 한옥을 보았다면 매우 기뻐할 것 같다. 그의 건축 철학을 아주 잘 담아낸 집이 한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진화는 관념적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옥은 철학적이지 않다.

물론 한옥에는 자연의 흐름을 잘 타는 문화가 있지만, 이를 사유를 통해 체계적으로 관념화하지 못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옥의 유학적 요소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우리 건축의 일관된 구성요소라고 단정하기 쉽지 않다. 적어도 건축에서 어떤 관념을 주체적으로 형성하지 못했음은 전국을 뒤덮는 아파트에서도 볼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장기적 전략을 세운다든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우리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전통한옥을 돌아보게 된다. 한옥 어디에서도 이상적인 관념 세계를 상정해서 끊임없이 현실을 변화시켜나간 사유의 힘을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따금 우리 역사의 곡절이 모두 한옥 때문은 아닐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막 공직에 발을 들인 행정고시 합격생들의 교육교재가 얼마 전 JTBC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기껏 ‘위대한 대한민국’이란 장을 만들어서는 국민 통제의 필요성을 혼란에 빠진 소말리아에 비교해서 기술했다고 한다. 이는 최근 박 대통령의 엉뚱한 월남 패망론과 이어진다. 우리 정부의 무능하고 비열한 모습에 모골이 송연하다. 기껏 생각해낸다는 것이 새마을운동이고 국정교과서고 국민통제를 통한 국민총화라니. 관념적 사유 능력이 부족한 약점은 상상력의 부재로 이어지면서, 정부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국제사회의 다양한 형태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한 채, 국민만 닦달하는 형국이다. 전통한옥을 보고 있으면, 끝없는 아파트 행렬을 보다 보면, 연득없이 한옥이 미워진다.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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