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하라고 권하던 친구들이 이젠 내가 카톡을 하지 않아 성가실 때가 있다고 말한다. 휴대전화만으로도 넘치게 소통되는 세상인데 좀 더 빨리 더 많이 소통하라고 권하는 그들도 이따금 지나친 소통으로 인한 문제를 한목소리로 이야기하곤 하면서. 잠깐 외국에 나갔을 때만큼은 카톡의 경제성과 속도감이 대단하다 느꼈지만, 나의 정서에는 맹독이 될 편리를 위해 둑을 허물 듯 가입할 수는 없었다. 윈도우가 막 확산되었을 때 나는 속도감 때문에 한 친구를 잃어버렸다. 그때 나는 힘든 일을 겪고 있어서 그 친구가 보내는 편지에 제때 답장할 수가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 없는 척 지내며 옆집 사람이 늘 열어놓고 있는 누군가의 블로그에다 댓글을 달기도 했지만,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쓰는 일만은 힘에 겨웠다. 아예 컴퓨터를 부팅하지 않고 몇 주일을 보낼 때도 있었고, 독서를 할 수도 없었으니, 되돌아봐도 내겐 어려운 시기였다. 그 사이에 친구가 보내온 편지가 쌓여가고 있었다. 그 친구는 20대에 재미 교포와 결혼해 미국으로 떠났는데, 그때 나는 말할 수 없는 고독을 느꼈다. 편지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동안 쌓여 있던 편지는 모두 삭제되어 있었고, 그 뒤 내가 보낸 편지에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처럼 쉽게 친구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뭔가가 크게 잘못된 듯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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