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명무실했던 감시 시스템
연제서, 서장이 사건 은폐 주도
청문감사관 있었지만 역할 못해
경찰청도 허위보고 믿고 뒷짐만
2. 대규모 특조단 투입했지만…
사하서 김 경장, 피해 부모 만나 10000만원 건넨 의혹만 밝혀
“부산청장 징계 수위 주의나 경고”…경징계 가이드라인 제시 뒷말도
지난달 부산에서 발생한 학교전담경찰관(SP0)들의 미성년자 성추문 사건은 처리 과정에서 일선 경찰서는 물론, 상급기관인 부산경찰청, 경찰청 등 경찰 전 지휘라인이 은폐와 축소,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한 총체적 부실로 드러났다. 경찰의 구조적 병폐가 고스란히 노출된 사건이지만 경찰 지휘부는 대규모 조사 인력을 투입하고도 언론보도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지 못해 ‘셀프 감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무마 급급한 서장들과 제 역할 못한 감찰 라인
경찰청 특별조사단(단장 조종완 경무관)은 SPO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청소년과 성관계를 맺은 혐의(위력에 의한 간음 및 강제추행 등)로 부산 사하경찰서 김모(31) 경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2일 밝혔다.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은 부산연제경찰서 정모(33) 경장은 불구속 입건했다. 정 경장의 경우 피해 여학생에게 1년여 동안 2만여 차례 문자를 보내는 등 호감을 산 뒤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를 연인 등으로 착각하도록 해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판단해 위계에 의한 간음 혐의를 적용했다. 또 지휘ㆍ감독을 소홀히 한 이상식 부산경찰청장을 비롯해 부산청 및 경찰청 소속 경찰관 17명은 책임 정도에 상응한 징계 조치를 취할 것을 경찰청에 의뢰했다.
특조단 조사 결과 사건처리 과정에서 일선서-지방청-본청에 이르는 감찰 라인의 역할은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당사자가 소속된 연제서와 사하서 서장들은 사건 인지 직후 자체 조사 없이 비위 경찰관들을 의원면직 처리했다. 특히 연제서는 비위 행위가 외부에 알려진 뒤에도 부산청에 허위 사실을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각 경찰서에 자체 비리를 조사하는 청문감사관(경정급)이 있었지만 서장(총경)이 나서 주도적으로 사건을 은폐한 탓에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다.
지방청이나 본청의 감시 체계도 작동하지 않았다. 부산청 감찰계장은 관할 경찰서의 은폐 사실을 알고도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고, 본청에도 “사건 자체를 인지하지 않았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본청 감찰담당관 등 역시 사건이 공개되기 전 관련 첩보를 입수해 사실관계까지 확인했으나, 부산청의 허위보고만 믿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셀프감찰 우려 못 벗고 경찰청장 면죄부만
이날 특조단 조사 결과는 성추문에 연루된 경찰관들의 뒤늦은 사법처리와 이미 알려진 경찰 감시시스템의 폐쇄성을 재확인 것 외에 주목할 만한 내용이 없다. 사전구속영장이 신청된 사하서 김 경장이 사직서를 내기 직전 피해 여학생 부모에게 1,000만원을 건네 무마 시도를 한 것 아니냐는 정도가 그나마 새롭게 밝혀진 의혹이다.
때문에 사건이 불거진 직후 책임론에 휩싸였던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면죄부만 준 꼴이라는 경찰 내ㆍ외부의 비판이 비등하다. 강 청장은 지난달 30일 26명으로 짜인 특조단 구성 계획을 밝히면서 “나 역시 조사 대상”이라며 엄정한 감찰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조종완 단장은 이날 강 청장의 책임과 관련 “(본청 감찰담당자) 개인의 책임으로 인정했고, 강 청장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논리적인 비약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징계 가능성을 열어 놓은 이상식 부산청장 역시 “징계 수위는 주의나 경고 정도”라고 말해 사실상 경징계 쪽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특조단은 또 두 청장의 휴대폰 내역만 조사 대상에서 제외해 불신을 자초하기도 했다.
경찰이 2주에 걸친 대대적인 조사에도 중간간부를 책임자로 한 자체 감찰의 한계를 드러낸 만큼 시민ㆍ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재조사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 경찰은 조만간 남녀 경찰관이 동성 학생을 전담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SPO제도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비리 전반의 문제점을 살필 수 있는 감찰 시스템의 개선책은 여전히 내놓지 않아 여론의 기대 수준을 충족하기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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