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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용의 수염

입력
2016.07.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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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한국은 중국산 얼린 마늘과 식초에 절인 마늘에 대해 315%의 관세를 부과했다. 수입업자들이 중국 현지에 냉동창고와 마늘을 까는 작업장을 우후죽순 세우면서 마늘 수입이 급증하자 내린 조치였다. 중국의 반발은 거셌다. 산둥성 농민이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중국은 일주일 뒤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정부는 당황했다. 당시 중국산 수입 마늘 총액은 900만달러 수준이었으나 중국이 수입 금지한 수출품 총액은 5억달러가 넘었다. 50배를 넘는 규모다.

▦ 7월 중순 우리 정부는 비밀협상을 통해 마늘 관세율을 예전 수준인 30%로 돌려놓고 향후 3년간 일정량을 관세 할당 방식으로 의무 수입하기로 합의했다. 덕분에 휴대폰 수출이 재개됐다. 마늘분쟁은 중국 경제 보복의 위력을 우리에게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2002년 7월 언론 취재를 통해서였다. 대규모 농민 반발이 예상되자 정부가 협상 사실을 숨긴 것이다. 이 바람에 협상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던 한덕수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경질됐다.

▦ 일개 포병중대라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배치 문제로 한중 관계가 급속도로 후진하면서 경제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중국은 한국의 전체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분의 1이다. 중국 전체 무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도 7% 수준이다. 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상황이고, 한중 FTA(자유무역협정)가 지난해 12월 발효됐기 때문에 중국도 관세 등을 통한 노골적 무역제재 조치를 취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이 더 무서울 수 있다.

▦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가 밝힌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통관ㆍ위생검사 등 비관세장벽 강화, 중국 관광객 방한 제한, 관영언론 통한 한국제품 불매운동, 중국 내 한국기업 표적단속, 중국 자본 한국서 철수 등이다. 사드 배치 진행 속도에 따라 중국은 보복 강도를 높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추세다. 조선산업 구조조정 등으로 국내 경제도 시끄럽다. “용의 수염을 만지고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는 일본 속담이 있다.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다. 혹시 용의 수염을 만진 건 아닌지.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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