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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300Km로 내달리는 한국형 좀비영화의 탄생

입력
2016.07.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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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은 전대미문의 좀비 바이러스가 전국을 뒤덮은 상황에서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재난블록버스터다. NEW 제공
영화 '부산행'은 전대미문의 좀비 바이러스가 전국을 뒤덮은 상황에서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재난블록버스터다. NEW 제공

개봉 한참 전부터 호기심을 불러모았다. 과연 어떤 영화이길래라는, 호감 어린 의문부호가 컸다. 20일 개봉하는 ‘부산행’은 지난 5월 제69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첫 상영 때부터 영화 팬들의 귀와 눈을 잡아당겼다.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한 멀티플렉스에서 열린 국내 첫 시사회는 ‘부산행’의 실체를 제대로 접할 기회였다. 한국일보 영화담당 기자들이 올 여름 ‘관객 사냥’에 나선 ‘부산행’의 첫 인상을 전한다.

영화는 서울역에서 KTX가 출발하며 이야기 궤도에 오른다. 부산행 열차 안에 승객들은 다종다양하다. 아내와 별거 중인 사내 석우(공유)는 서먹한 관계인 딸 수안(김수안)과 함께 열차를 타고, 젊은 부부 상화(마동석)와 성경(정유미)도 승객이다. 대기업 임원으로 이기적이고도 이기적인 중년 남자(김의성)와 노숙자, 고교 커플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도 탑승자다. 탑승 전까진 아무런 인연이 없던 이들은 같은 시간 같은 열차에 타며 똑 같은 운명의 도전 앞에 놓인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불청객이 이들 앞에 나타나면서 객실은 아비규환이 된다. 석우는 딸을 지키기 위해, 상화는 임신한 아내 성경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영화는 열차 객실 안이라는 폐쇄공간에서 펼쳐지는 사람들과 좀비들의 아귀다툼을 그려낸다. 생면부지의 승객들이 생존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위해 힘을 합쳤다가도 이기적인 행태를 보이고, 반목하다가도 공통의 적 앞에서 손을 잡는 장면 등이 서스펜스를 빚어낸다. 좁은 공간을 통해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세태도 다룬다. 장편애니메이션 ‘돼지들의 왕’과 ‘사이비’ 등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아온 연상호 감독이 연출했다. ‘부산행’은 연 감독의 첫 실사 장편영화다.

라제기 기자(★★★★/다섯 개 만점)

좀비영화를 보고 눈가가 촉촉해질 줄 몰랐다. 심장을 서늘하게 하면서도 가슴까지 적시는 ‘감성 좀비영화’다.

충무로에서 좀비는 낯선 존재다. 독립영화 진영에서 몇 차례 다뤄졌으나 주류 상업영화는 외면해왔다. 공포영화의 대중적 기반이 넓지 않으니 하위 장르에 해당하는 좀비영화의 설 자리도 좁았다. 하지만 ‘부산행’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시속 300㎞로 내달린다. 좀비장르의 규칙을 가져오면서도 한국식 변형을 시도한다. 흔한 가족애 위에 재난이 벌어지면 각자 살 궁리를 해야 하고 “쓸모 없으면 버림 받는” 한국의 지옥도를 얹는다. 인물들의 면면과 대사를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현재를 읽을 수 있다.

중반부를 넘으며 한국형 좀비영화라는 ‘부산행’의 신선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제법 무섭기도 하고 차가운 웃음까지 제조하던 영화(상영시간 118분)는 막바지 20분을 남겨놓고 생각지도 않던 폭발력을 보여준다. 영화의 3분의 2 지점까지는 400만~500만 관객을 점쳤는데, 심장을 쥐며 눈물을 쏟게 할 20분이 예상 수치를 2배로 바꿔놓았다.

영화 '부산행'의 석우(공유)는 우연히 타게 된 KTX 안에서 좀비들과 만나고 딸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NEW 제공
영화 '부산행'의 석우(공유)는 우연히 타게 된 KTX 안에서 좀비들과 만나고 딸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NEW 제공

강은영 기자(★★★☆)

‘칸 프리미엄’을 안고 가장 기대되는 여름 대작 중 하나다. 상영시간 내내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해외 관객들에게도 통한다는 걸 보여준, 칸영화제에서의 성과를 무시할 수 없다. ‘부산행’의 투자배급사 NEW가 여름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대작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 ‘터널’이 보란 듯 눈치보지 않고 개봉일을 주도할 정도로 자신감을 내비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으로 호평을 받은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도전, 한국형 좀비라는 장르물로 승부수를 던진 과감함도 주목 받아 마땅하다.

관건은 ‘설국열차’와 ‘월드 워 Z’를 섞어 놓은 듯한 스토리와 컴퓨터그래픽(CG)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느냐다. 1,000만 관객 돌파가 미지수인 이유다. 칸에서는 100% 완성되지 못한 어설픈 CG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좀비 격퇴’에 나선, 칸을 열광하게 만든 ‘마동석 마법’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임신한 아내를 둔 상화(마동석)는 우람한 덩치와 완력을 이용해 좀비들에 맞선다. NEW 제공
임신한 아내를 둔 상화(마동석)는 우람한 덩치와 완력을 이용해 좀비들에 맞선다. NEW 제공

김표향 기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부산행’ KTX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감염으로 인한 희생자가 속출하지만 정보는 차단돼 있고 구조의 손길은 전무하다. 아비규환이 된 열차 안,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개인의 희생과 연대뿐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열차 안이나 바깥이나 컨트롤타워는 부재다.

영화 속 정부 당국자는 바이러스로 인한 환란을 ‘폭동’ ‘과격시위’라 규정한다. 정부가 바이러스 취급하는 좀비들은 공포스러운 존재지만 사실 무고한 희생자이기도 하다. 급증하는 사회적 불안에는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말로 무신경하게 대처한다. 기울어진 배 안에 물이 차오르는데도 “가만히 있으라”던 그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부산행’은 사회적 함의를 많이 담고 있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방송 뉴스로 무수히 접하던 실제 재난 현장의 모습이 머릿속을 바쁘게 스쳐 지나간다. 영화가 아니라 사실 대한민국 자체가 ‘재난 블록버스터’ 아닌가. 그렇다면 누가 좀비인가. 승객들을 버린 채 탈출한 선장과 저 혼자 살겠다고 사람들을 희생시킨 영화 속 대기업 임원이 진짜 좀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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