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검찰은 피의자가 “정신질환에 기인하여 불특정 여성을 상대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결론 내렸다. 불특정 여성에 대한 공격성이 드러났지만 여성 비하나 차별 등에 기반을 둔 ‘여성 혐오’ 범죄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편, 몇몇 대학에서는 남자 학생들이 카톡방에서 비속어를 쓰며 여학우 등을 성적 대상화하는 언어 성폭력 사건들이 드러나 논란에 휩싸였다. 전자의 사건이 조현병 환자의 우발적 범행이라곤 하지만, 사회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과 경시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은 되려 비합리적인 것 같다. 법적으로 증명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작금의 사건들은 남자인 나에게 한동안 잊혔던 불편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고등학교 때 외국에서 돌아와 소위 강남 8학군의 한 남학교에 들어갔었다. 당시 내가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것 중 하나는 학우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던 성적 담화의 수준이었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낸 영국에서도 10대의 남자아이들끼리 ‘플레이보이’를 돌려보고,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성적 농담을 주고받긴 했다. 근데 뭐랄까. 멀쩡한(?) 중산층 가정의 순응적인 아이들로 자라온 한국 남자 고등학생들의 성적 담화는 서양 아이들과는 숫제 비교되지 않을 만큼 저질스러웠다. 총을 맞으면 어설프게 빨간 페인트가 피처럼 흐르는 할리우드 액션물을 보다가, 지극히 리얼하면서도 새디스틱한 하드고어(hard gore) 방화물을 보는 느낌이었다.
왜들 그랬는지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당시 잔인한 체벌이 일상화되어 있고 날이면 날마다 몽둥이세례를 받으면서 ‘입시’만을 부르짖던 학교의 억눌리고 스트레스로 가득 찬 분위기, “명문대만 들어가 봐 이것들아! 얼마든지 예쁜 여자들 따먹을 수 있어!”라고 얘기하던 여러 남자 교사들의 비뚤어진 태도와 가치관이 어린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흉측한 사회적 심성을 빚어오지 않았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하루는 남자 고등학생들끼리의 그렇고 그런 음담패설을 멀거니 듣고 있다가 내가 “야, 너희 같은 애들하고 나중에 결혼하게 될 한국 여자들이 불쌍하다”고 한마디 했었다. 그러자 돌아온 답변이 걸작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아, 형(학년을 편입하느라 1년 늦게 들어갔다) 왜 또 그래요. 알고 보면 저것(여자)들도 우리하고 똑같이 저질이고 싸가지가 없어요.”
예의로 대해짐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진심으로 배우지 못한다. 어쩌면 그것은 이 사회에서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나라의 여자는 그 나름의 형편없음이 필경 있으리라. 형편없는 사람들끼리의 환경에서 전형적인 생존 방식으로 남는 것은 폭력이 아니면 교활한 배신인데, 속물적이고 경쟁적인 외적 조건을 최대한 맞추려 발버둥 치는 와중에서도 어떻게든 사랑만은 꼭꼭 챙기려 드는 이 땅의 남녀들은 그래서 짐짓 가엾지만 우습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인간적으로 나아질 가망을 꿈꾸면서, 차제에 서로 제대로 혐오해 보는 건 어떨까.
지난 경험을 돌이켜보면, 민주적 시민성과 미개함의 벗어남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무관하지 않다. 얼마 전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카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이젠 불혹의 나이가 된 그때 그 아이 중에서도,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친구들이 기고만장한 우애를 과시하며 동영상을 올렸다. 어느 대학교 학부생들의 섹스 동영상이란다. 나는 여성의 입장을 정확히는 알 길이 없지만, 이런 한국사회가 평상시에도 참으로 무섭고 음침하고 분노스럽게 느껴지겠다 싶다. 이 나라에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정상적으로 연애하고, 섹스하고, 사랑하면서 살까. 아직 인간으로서 그 기본조차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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