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한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을 하루 앞둔 11일 중국은 외교채널과 관영매체가 총동원돼 PCA 판결 무력화에 나섰다. 자국에 결코 유리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에 따른 선제조치의 성격이 짙다. 예상대로라면 PCA 판결 이후 동북아의 긴장ㆍ갈등 구도는 한층 격화할 전망이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중재 소송은 시작부터 불법적 둥시(東西)였다”며 거부 입장을 재차 분명히 했다. 중국어에서 ‘둥시’는 일반적으로 물건을 뜻하지만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낼 때도 사용되는 표현이다. 또 류전민(劉振民) 부부장은 공산당 이론지 기고문을 통해 “PCA의 재판관 5명 중 4명이 우익 성향의 일본인에 의해 지명됐다”며 재판부의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논평기사를 통해 “남해(남중국해) 문제에 역외국가인 미국이 개입해 역내 갈등과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중국이 판결 전날 PCA 재판 결과에 대한 불복은 물론 재판부의 공정성까지 거론하고 나선 건 결과에 상관 없이 남중국해에 대한 실효지배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분쟁 수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이날까지 진행한 것이나 분쟁지역 내 인공섬에 등대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PCA 판결 결과가 사실상 미국과의 본격적인 패권 경쟁에 있어 방아쇠의 역할을 할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실제 PCA의 재판 결과는 중국에 불리하게 나올 것이란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중국이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는 구단선(九段線)의 경우 PCA가 명확한 법적 근거를 요구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영유권 자체의 귀속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더라도 중국의 구단선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 다른 쟁점인 중국의 인공섬에 대해선 썰물 때 드러나고 밀물 때 잠기는 간출지(干出地)로 판단할 공산이 크다. 간출지의 경우 자연섬과 달리 12해리(약 22.2㎞) 영해를 인정받지 못하는 만큼 중국 입장에선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는 것이어서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은 국제사회에서의 입지 축소와 무관하게 남중국해 분쟁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더욱 강조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항행의 자유’ 작전을 확대하려는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 무력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불가피하다. 미국은 이미 중국의 공격적인 대응에 대비해 필리핀해 인근에 대규모 해상전력을 배치한 상태다.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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