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시사주간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는 지금 세계 문단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이다. 그러나 그 이름엔 얼굴이 없다. 은둔 작가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첫 권 ‘나의 눈부신 친구’(한길사)가 국내 출간됐다.
11일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출간기념간담회에도 작가는 없었다. 작품을 번역한 김지우씨는 “1992년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대중 앞에 나타난 적이 없다”며 “나폴리 출생의 여성 작가라고만 알려져 있지만 그마저도 정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페란테는 에세이 1권과 소설 7권의 작품이 전부다. 국내에 2011년 ‘홀로서기’란 작품이 번역된 적이 있지만 큰 반향을 얻진 못했다.
오직 이탈리아 출판사 에디치오니의 대표와만 연락을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진 작가는 미국 뉴욕의 저명한 문학전문지 ‘파리 리뷰’와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라 델라 세라’에 서면 인터뷰 형식으로 드물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에 대해 뚜렷하게 소신을 밝힌다. “책은 한 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책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다면 저자가 독자를 찾아 나서겠지만,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폴리 4부작은 195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를 배경으로 두 여성 레누와 릴라의 60년에 걸친 우정을 그린 소설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쓰여진 작가의 최근작이자 본격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두 사람의 유년기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순종적이고 모범적인 레누와 도발적이지만 남다른 명석함으로 레누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릴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시절 가난한 시골 동네에서 흔하게 자행됐던 남녀 차별과 아동에 대한 폭력은 두 소녀의 유년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페란테는 두 소녀의 우정에 대해 “내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복잡하고 어려웠던 친구와의 관계에서 나온 것”이라며 이 책이 자전 소설임을 밝힌 바 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우정이라는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어떤 소설보다 강한 정치ㆍ사회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며 “다른 나라 문학에 다소 배타적인 영미권에서 이 소설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미권에서 페란테의 인기는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미국에선 별다른 광고도 없이 120만부나 팔렸으며 타임은 2015년 ‘올해 최고의 소설 1위’에 이 작품을 올렸다. 퓰리처상 수상작가 줌파 라히리와 할리우드 배우 기네스 펠트로 등 유명인사들이 앞다투어 페란테를 언급하는 동안에도 작가는 나타나지 않았고 역으로 그의 주가는 더 치솟는 중이다.
현재 번역 중인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올 10월경 출간된다. 출판사 측은 내년에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4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의 번역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신재현 인턴기자 (이화여대 경제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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