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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제2의 민주화’가 필요할 때다

입력
2016.07.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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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세계경제포럼(WEF)이 펴낸 ‘포괄적 성장과 개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세제와 복지 등 소득 불평등 해소 정책이 ‘선진국’ 중에서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사회 각 부문에서 대기업 등 힘이 센 측의 구조적 부패도 심한 것으로 지적됐다. 비단 대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 분야로 부조리와 부패가 확산되고 있다. 소득 상위 10%의 소득비중은 50%에 육박하고 있다. 100대 대기업의 고용비중은 4%에 불과하지만 전체 순이익의 60% 정도를 가져갈 정도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장하성 ‘한국 자본주의’). 또한 30대 그룹 상장사 임원의 연봉은 직원 평균 연봉의 10배,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OECD 회원국 중 미국 다음으로 높다.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이 세계 1위 수준이라는 사실이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외모지상주의, TV에는 유명 연예인도 부족해서 그들의 자녀까지 동원되고, 역사와 정치도 예능화해야 직성이 풀리는 예능만능주의가 대세다. 시대의 애환을 반영하고 대중의 정서를 대변했던 가요도 아이돌 그룹의 ‘영혼’ 없는 가사에 묻혀버렸다. 자극적 사건·사고에 대한 설명과 분석이 전문가의 해설까지 곁들여서 케이블 방송을 종횡무진 한다. 혐오스러운 사건이 빈발하는 데 대한 사회적 성찰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갑질’의 일상화와 언론의 주요 면을 장식하는 성추행 기사 등 품격은 고사하고 결례와 천박함이 구조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연대의식과 배려는 개인을 옥죄는 사치로 전락해가고 있다. 한국사회의 계층 간 이질감의 증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원심력과 각자도생의 사생관은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

한ㆍ미가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결정한 이후 한반도에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사드의 효용성, 국익과의 연관, 동북아의 신냉전 구도 조성 문제 등, 사드 배치에 대한 다각도의 검토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사드 배치가 북한의 비핵화를 막을 수 없음은 새삼 설명이 필요 없다. 사드를 둘러싼 갈등과 후폭풍이 예상을 넘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국가의 생존이 걸리고 경제·문화적으로도 국익과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이해와 여론을 집약하고 표출해서 최대공약수를 도출함으로써 갈등을 최소화해 내는 ‘정치’는 보이지 않았다.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당나라 후기 시인 허혼(許渾)의 시 중 ‘산에 비가 오려 하니 누각에 바람이 가득하네’(산우욕래풍만루ㆍ山雨欲來風滿樓)란 시구는 위기가 다가옴을 알리는 선행지수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허혼은 당 제국의 황혼기에 제후들의 발호와 환관의 전횡, 극심한 당쟁을 누각에 가득한 바람으로 표현했다. 요즘 부쩍 주변에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부패, 양극화, 불평등, 도덕적 해이, 정치 실종 등은 생소하지 않은 단어들이지만 ‘누각의 바람’처럼 불길하게 느껴진다. 늘 있었던 현상들이지만 이제 임계점에 온 듯한 불안으로 다가온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군사권위주의를 종식하고 민주화를 일궈냈으나 지금의 외견상 민주주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성취해 나가는 과정과 조응하지 않으면 형식적인 절차적 민주주의에 머물고 만다. 국가권력의 양태를 변경하는 개헌에 관한 공감대가 있다 하더라도 정작 중요한 건 부패와 격차의 해소, 상호 배려와 공존의 체화를 위한 국가 골격의 대변혁이다. 이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제2의 민주화 대장정’을 시작해야 한다.

권력정치의 관점에서 정치는 투쟁을 통한 권력획득이 본질이다. 그러나 정치의 본령은 갈등의 조정과 사회적 잠재력의 극대화다. 사회 전 영역에 걸쳐 광범하게 퍼져 있는 부조리 구조와 부패의 고리를 끊고 사회의 격을 높이는 역할은 역시 정치의 몫이다. 따라서 권력구조 개편과 국회의원 ‘특권 포기’도 ‘실질적 민주주의’의 성취를 위한 정치복원의 전제로서 기능할 때 의미를 갖는다.

최창렬 용인대 중앙도서관장ㆍ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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