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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어떤 인연

입력
2016.07.1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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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앞에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놓고 앉아 있다. 반드시 나를 위해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며 한 성직자가 보내준 돈이다. 도움을 드려야 할 분인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보니 숙연해진다. 그분과 첫 인연을 맺던 순간이 떠오른다. 절판된 내 책을 찾다가 힘들게 연락처를 알아내 직접 전화했을 때였다. 서로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몇 마디 주고받던 우리는 그 순간 이후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분의 전화를 처음 받던 무렵, 나는 작은 전화벨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그걸 보고 스트레스를 받던 여중 동창은, “괴한이 집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헤치려고 달려와도 삼십 분은 걸려. 그 시간이면 누구든 안전하게 피할 수 있다구. 그런데도 전화 받을 때의 네 목소리는 눈앞에 괴한이 있는 것만 같아”라고 말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본 적도 없는 사람과의 첫 통화 중에 긴장이 풀려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에게도 쉽게 하지 못할 부탁을 할까 말까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나와 통화한 뒤 곧바로 외국에 다녀올 일이 있다는 그분에게 찬스에 강한 나의 입이 뭔가를 부탁하고 싶어 근질댔던 것. 그날 이후 우리는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이따금 만난다. 나처럼 세속적으로 살지 않으면서도 세속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더없이 관용적인 사람. 그분이 보낸 돈을 앞에 놓고 마음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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