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표 측 인사 “국가적 관점에서 행복 기준 재설계”
“올해 말까지 시대적 비전 고민, 청사진 내놓는 워밍업 시간”
당분간 일선 정치와 거리두기, 추가적으로 외국 방문 할 수도
‘국민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나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6일 간의 히말라야 구상을 마치고 내놓은 일성은 ‘국민 행복’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문 전 대표는 정치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차근차근 꺼내놓고 있는데요, 일각에선 ‘국민 행복’이 향후 문 전 대표의 대권 플랜의 골격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문 전 대표는 ‘정치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규정하며 행복론의 운을 뗐습니다. 9일 오전 6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한 문 전 대표는 귀국 첫 메시지로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며, 정치가 국민에게 행복을 주지 못한다면 존재가치가 없다”고 설파했습니다. 이 점에서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는 철저하게 실패했다며 날 선 발언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날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인 김경수 더민주 의원의 부친상 빈소가 마련된 경남 진주에서는 ‘국민행복’의 실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문 전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의 연설을 언급하며 “케네디는 GNP(국민총생산)를 사람을 행복하지 않게 하는 요소의 총집합이라고 했다”며 “실제로 용기, 애국심, 유머 등은 GNP 속에 포함되지 않고, 오히려 최루탄 생산은 들어가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문 전 대표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다 행복의 요소”라고도 덧붙였습니다.
朴 행복론은 정책 마케팅성 구호, 文 행복의 기준 자체를 재설계
문 전 대표가 ‘행복’을 화두로 꺼내 들었지만, 신선하지 않다는 여론의 반응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후보 시절 내세운 ‘국민행복시대’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우스개 소리로 저작권 논란 마저 불거지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문 전 대표가 구상하는 ‘행복론’은 박 대통령의 그것과는 나름의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박 대통령의 ‘행복론’은 정책 목표의 상징적 귀결점으로 행복이란 단어를 단순히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는 데 그쳤다면, 문 전 대표의 ‘행복론’은 우리 사회가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둘지 고민해보자는 차원에서부터 정책 구상을 접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물질적 경제 성장에서만 행복을 찾았다면, 이제는 행복의 기준 자체를 재설계 해보자는 노력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10일 “삶과 행복을 바라보는 기준이나 틀을 국가적 관점에서 재설계할 필요성이 있다”며 “오직 물질과 성장, 경쟁만 강조하는 기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준을 찾다 보면, 이는 곧 권력구조를 비롯한, 정치 경제 산업 사회 문화 정책을 다 포함한 국가 개조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을 내놨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은 단순히 ‘소득이 중간에 있는 사람’이라는 식의 경제적 격차로 규정되지만, 유럽에선 ‘사회적으로 잘 통용될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의 범주로 묶인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인식의 간극을 점차 메워 나가는 식입니다.
이 관계자는 “1987년 체제가 산업화 시대에 함몰됐던 개인의 인권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끄집어내는 터닝포인트였다면, 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국가적 좌표가 미진했거나 전무한 게 사실이다”며 “산업화와 민주화의 목적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냐를 묻는다면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행복이 그 답이고, 이를 만들어가기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라고도 말했습니다.
“네팔과 부탄은 성찰과 침잠의 시간, 이제는 인프라를 채울 것”
앞서 문 전 대표 측은 ‘세계에서 손 꼽히는 최빈국이지만, 국민 97%가 행복하다는 나라’인 부탄 방문 사실을 페이스북에 알리며 “부탄이 비록 대한민국보다 여러 면에서 뒤쳐져 있어 발전모델 측면에서 국가적 관심이 될 수는 없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물론 국정운영시스템 자체가 국민 전체 행복과 지속가능 발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는 점만큼은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가져왔다”며 “’국민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적었습니다.
그 지난한 여정에서, 네팔과 부탄은 첫 발걸음이라는 게 문 전 대표 측 설명입니다. 문 전 대표 측 또 다른 인사는 “지난 대선 직후엔 패배를 복기하느라, 다음 대선을 염두에 두고 비전에 대해 깊이 성찰할 시간이 없었다”며 “네팔과 부탄이 성찰과 침잠의 시간이었다면, 올해 말까지는 다음 대선에 필요한 시대적 비전을 고민하고 그걸 내놓을 수 있는 워밍업의 시간으로 채울 것이다”고 했습니다.
네팔과 부탄에서 ‘어떤 행복이냐’에 대한 기준을 구하는 작업에 매진했다면, 이 다음부터는 이를 실제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우리 보다 시스템이나 인프라 측면에서 앞선 나라들을 추가적으로 둘러보고 대한민국의 행복 비전을 가다듬겠다는 구상입니다.
문 전 대표 측은 “8월 27일 전당대회 전후로 당분간 일선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갈 것이다”며 “여건이 되면 추가적으로 외국 방문에 나설 수 있다”고도 전했습니다. 책을 출간하게 되더라도 단순히 히말라야 여정만 담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니, 문 전 대표가 구상하는 대선 담론의 첫 페이지를 읽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지훈련에 다녀왔다”는 말로 본격 대선 행보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문 전 대표가 올해 말까지의 워밍업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행복 비전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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