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7월 11일
1960년 7월 11일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가 발간됐다. 책은 미국서 약 1,000만 부가 팔렸고, 4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앨라배마 출신 뉴욕의 항공사 매표원. 잡지 편집자, 출판 기획사 직원이던 35세 무명 필자는 이듬해 퓰리처상을 타며 전과 180도 다른 세상을 맞이했다. 그는 고향 앨러배마 주 먼로빌로 돌아가 지난 2월 19일 별세할 때까지 칩거하다시피 하며 낯설어진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켰다.
숨어버린 작가를 두고 세상은 또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댔다. 고향 친구였던 저명 작가 트루먼 카포티(1924~1984)와의 염문설ㆍ갈등설, 우울증 등 정신질환설, 막대한 인세 수입의 용처와 신작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풍문도 끊이지 않았다. 그를 인터뷰하거나 평전을 쓰려고 접근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퍼 리는 곁을 주다가도 전기작가가 본심을 드러내는 순간 차갑게 외면하곤 했다. 2002년 시카고트리뷴에 기사를 쓰고, 2014년 회고록 ‘The Mockingbird Next Door: life with Harper Lee’라는 책을 쓴 저널리스트 마리아 밀스(Marja Mills)도 그런 예였다. 그는 먼로빌로 이사해 이웃처럼 지내며 하퍼 리와 친분을 쌓았지만 그가 책을 쓰겠다고 하자 하퍼 리는 단호하게 관계를 끊었다. 하퍼 리는 “단언컨대 내가 살아있는 한, 나의 협력으로 쓰여졌다고 주장하는 어떠한 책도 모두 거짓”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고 당시 외신은 전했다.
하퍼 리가 숨진 직후 잡지 ‘보그’는 “하퍼 리에게는 평생 한 남자가 있었다”는 문장과 함께 카포티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긴 기사를 썼지만, “하퍼 리에게는 평생 한 여자가 있었다”로 시작하는 기사도 쓰여질 수 있을 것이다. 15년 손위 언니 엘리스 리(Alice Lee, 1911~2014)다. 자매의 아버지처럼 먼로빌의 변호사가 된 앨리스는 동생에 관한 모든 일, 즉 인세 관리 등 대외적인 일에서부터 온갖 소문과 관심에 대응하고 방어하는 일을 도맡으면서 하퍼 리의 프라이버시를 지켰다. 다른 말도 있지만, 말년의 하퍼 리는 정상적인 소통이 힘들 만큼 눈과 귀가 어두웠고 정신도 자주 혼미했다고 한다. 그런 동생을 보살핀 이도 앨리스였다.
103세의 앨리스는 2014년 11월 별세했고, 후임 법률 대리인이 하퍼 리의 새 책 ‘파수꾼’을 낸 건 8개월 뒤였다. 7개월 뒤 하퍼 리도 별세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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